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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최저임금 인상 효과" 文 자찬한 자료, 저자는 "분석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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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31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긍정효과가 90%"라고밝혀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5월 31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긍정효과가 90%"라고밝혀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의 실패라는 진단이 성급하게 내려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가 90%다.”

2018년 5월 31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전 통계청의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하위계층 소득이 최대폭으로 하락하고, 소득 격차도 벌어진 뒤 나온 발언이라 “근거가 무엇이냐”는 논란이 일었다. 소주성 설계자였던 홍장표 당시 경제수석은 사흘 뒤인 2018년 6월 3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대통령님의 말씀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통계청의 로(raw)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라며 “개인 근로소득 증가율 분석 결과 하위 10%를 제외하고는 올해 소득증가율이 지난해에 비해 높았다”고 말했다. 그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16.4% 오른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 것이다.

지난 15일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한 감사원은 이같은 홍 전 수석의 발언을 허위라 판단했다. 홍 전 수석이 인용한 통계 자료도 짜깁기에 가깝다고 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조사 발표 당일인 2018년 5월 24일 소주성에 대한 비판이 일자 “뭐라도 분석해야 한다”며 통계청에 원 자료를 요구했다. 개인 식별정보가 포함돼 외부 제공 시 거쳐야 하는 사전 심사도 받지 않았다. 경제수석실은 표본을 따져봤지만 문제가 없자, 과거 경제수석실 인사들과 함께 연구했던 한국노동연구원 A연구원에게 개인 소득 증감 분석을 별도로 요청했다.

2018년 6월 3일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긍정효과 90%" 발언 관련 근거를 브리핑하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6월 3일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긍정효과 90%" 발언 관련 근거를 브리핑하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A연구원은 자료를 건네받고 하루 만에 만든 엑셀시트를 2018년 5월 27일 경제수석실에 전달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 분석 없이 연도별 개인 근로소득 증감률이 담긴 표 한장과 그래프 두 개가 내용의 전부였다고 한다. 홍 전 수석의 설명처럼 “국책연구기관의 면밀한 분석”이 아닌 개인 연구원이 급조해 만든 자료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A연구원도 감사원 조사에서 “통계청 자료엔 근로시간 정보가 없어 최저임금 영향을 분석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15일 공개한 감사 결과 자료에도 홍 전 수석이 A연구원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뒤 별다른 근거 없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라는 자의적 해석을 붙인 보고서를 만들어 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명시했다. 2018년 5월 29일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에서 홍 전 수석이 문 전 대통령에게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 근로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고 설명했고, 이틀 뒤 문 전 대통령이 “긍정 효과 90%”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최달영 감사원 1사무차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최달영 감사원 1사무차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감사원은 홍 전 수석이 “하위 10%를 제외하고는 올해 소득증가율이 지난해보다 높았다”고 한 부분도 통계 착시에 가깝다고 밝혔다. 홍 전 수석은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분석 기준인 ‘가구’가 아닌 ‘개인’ 근로소득 증가율 분석을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해당 통계엔 실업자와 자영업자가 빠져있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지출이 늘어난 이들의 어려움이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다. 감사원 관계자는 “그런 통계엔 최저임금 인상 효과의 수혜자만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감사원은 홍 전 수석이 브리핑 전 통계청에 허위 보도자료 작성도 지시했다고 밝혔다. A연구원 분석의 근거가 된 통계 자료는 경제수석실이 통계청에 자료를 요구해 ‘통계청→청와대→A연구원’의 순서로 건네졌다. 하지만 홍 전 수석이 언론브리핑을 앞두고 “통계청이 국책연구기관에 자료를 제공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작성토록 통계청에 지시했다는 것이다.

2018년 6월 29일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이 '제4회 국민 삶의 질 측정 포럼'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황 전 청장은 재임 기간 청와대에 통계자료 요구 등에 "위법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한다. 연합뉴스

2018년 6월 29일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이 '제4회 국민 삶의 질 측정 포럼'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황 전 청장은 재임 기간 청와대에 통계자료 요구 등에 "위법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한다. 연합뉴스

뒤늦게 통계청 직원들이 사전 심사 없이 청와대에 통계자료를 제공한 사실을 알게 된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은 홍 전 수석의 브리핑 전날인 토요일(2018년 6월 2일)에 통계청 직원을 불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황 전 청장은 애초 보도자료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지만, 홍 전 수석이 직접 전화까지 하며 요청하자 “최근 한 국책연구기관에 의해 발표된 소득분석에서 사용한 자료는 통계청이 제공한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원자료”라는 보도자료를 회의 뒤 배포했다. 감사원은 개인정보가 포함된 통계자료를 불법으로 건네받고, 허위 브리핑 및 허위 보도자료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지난 13일 홍 전 수석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본지는 홍 전 수석에게 이와 관련한 입장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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