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아픈 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나는 모든 일의 원인을 알 수 있다.’ 과학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줄 것이란 믿음은 현대인의 종교다. 영화 ‘잠’은 우리의 일상에 뿌리내린 그 믿음을 밑동부터 흔들어 놓는다.

평범했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잠을 자다가 낯선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누가 들어왔어.” 아내가 침실에서 나와보니 아무도 없다. 이상하게도 베란다 문이 열려 있고 반려견이 선반 위에 올려져 있다. 남편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된다. 자다가 얼굴을 심하게 긁어 피투성이가 되는가 하면 냉장고를 열고 생고기와 날계란, 생선까지 씹어 삼킨다.

컷 cut

컷 cut

원인을 알아야 고칠 것 아닌가. 의사는 부부에게 “렘수면 행동장애”라고 말한다.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하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아내는 점점 불안에 잠식돼 간다. 진짜 수면장애인 걸까. 아니면, 귀신에 들린 걸까. 이러다 우리 아기에게도 손을 대는 게 아닐까.

아내는 지치고 불안할수록 집착한다.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 거실에 걸어둔 나무 푯말을 가리키며 아내는 “함께 극복하는 게 부부”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그 원인을 찾아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또 다른 사태를 낳는다. 암 투병을 하던 일본 철학자의 편지를 담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들여다보면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행임에도 억지로 누구 때문이라고 떠넘기거나 자기 책임이라며 떠안는 상황이 종종 눈에 띕니다.”

아픈 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픈 사람의 잘못도, 누가 저주한 탓도 아니다. 원인에 집착하다 보면 아픈 사람이 죄인이 되고, 귀신 탓을 하게 되고, 옆의 사람이 ‘도와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진다. 때로는 원인을 알기 힘든 불행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영혼은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