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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수소열차' 또 미뤄진다, 예산 확보 실패…교외선도 불똥

중앙일보

입력

오송시험선에서 주행 중인 수소전기동차 시제차. 사진 국토교통부

오송시험선에서 주행 중인 수소전기동차 시제차. 사진 국토교통부

 정부 R&D (연구개발)과제로 기술개발이 끝난 ‘수소전기동차’의 상용화를 위한 실증사업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불발될 거로 확인됐다. 관련 예산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요 국가 간에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수소열차 개발 경쟁에서 자칫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또 실증사업이 끝나는 대로 교외선에 수소전기동차를 투입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21일 국토교통부와 철도업계에 따르면 수소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해 달리는 수소전기동차 관련 기술은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사업비 256억원을 투입해 개발됐다. 국고에서 220억원이 지원됐고,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우진산전이 36억원을 보탰다.

 기술개발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우진산전이 함께 했다. 이때 제작된 시제차량은 2량 한 편성으로 좌석과 입석을 합해 최대 400명을 태울 수 있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110㎞다. 한번 충전으로 600㎞를 주행할 수 있고, 오송시험선에서 5000㎞ 주행시험도 마쳤다.

잔존수명이 다 돼 폐차해야할 디젤동차. 자료 코레일

잔존수명이 다 돼 폐차해야할 디젤동차. 자료 코레일

 이에 따라 국토부에선 지난해 정부 예산안에 수소전기동차 실증사업을 위한 예산을 포함시켰다. 실제 최고시속 150㎞대의 여객수송용 차량을 새로 제작해 시스템 안정성과 효율성 등을 검증하고, 성능 개선을 거쳐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수소전기동차가 상업운행에 투입되면 교외선과 경원선 등 비 전철화 구간을 달릴 수 있는 데다 내구연한이 다 돼 폐차해야 할 121량의 디젤동차도 대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비 전철화 구간은 전체 철도의 27%가량이다. 친환경 열차라 탄소중립 실현에도 보탬이 된다.

 하지만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 막판에 탈락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개발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지적 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빠져버렸다. 내년 4월부터 2026년 말까지 신청한 예산은 총 270억원이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당초 국토부에선 수소열차 분야에서 수소전기동차 실증사업과 수소기관차 개발사업 등 2가지를 올렸으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검토 과정에서 실증사업이 제외된 것이다. 수소기관차 개발은 기존 디젤기관차 대체가 목적이다.

 하창훈 국토부 철도운행안전과장은 “앞으로 실증사업은 가급적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R&D 예산 재검토 지시 이후 관련 예산들이 대폭 삭감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철도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민간이 실증사업을 주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소전기동차 상용화를 위해선 관련 규제와 법령 정비 등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노선에서 실증사업을 하려면 정부와 운영기관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수소전기동차 시제차 내부. 자료 우진산전

수소전기동차 시제차 내부. 자료 우진산전

 이렇게 수소전기동차의 실증사업이 계속 지연되는 사이 외국에선 수소열차 개발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프랑스 알스톰사는 2018년 9월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수소열차 운행을 시작했다.

 독일 지멘스사도 최고속도 160㎞대의 수소열차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중국 역시 수소트램과 수소기관차 등을 개발했으며, 일본도 지난해 최고속도 100㎞대의 수소열차 히바리의 시범운행을 개시했다.

프랑스가 개발한 수소열차. 자료 국토교통부

프랑스가 개발한 수소열차. 자료 국토교통부

 수소전기동차의 실증사업 지연은 내년 말 재개통 예정인 교외선(능곡~의정부, 32.1㎞)의 운행차량 계획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교외선 운영을 맡은 코레일은 당초 디젤동차를 넣으려고 했으나 잔존수명(1.3년)이 너무 짧은 탓에 투입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객차 2량의 앞뒤에 디젤기관차를 각각 붙여서 운행하려고 했으나 철도차량 안전규칙에 위배돼 이 역시 무산됐다. 결국 디젤기관차 한 대가 객차 2량을 끌고 가되 시발역과 종착역에서 기관차를 분리해 다시 앞에 붙이는, 임시방편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한부로 디젤기관차를 운행하다가 수소전기동차 실증이 완료되면 이를 투입하겠다는 게 국토부와 코레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증이 지연되면서 자칫 교외선은 상당 기간 디젤기관차만 다녀야 할 공산이 커졌다. 김민태 국토부 철도운영과장은 “수소전기동차 실증을 최대한 앞당길 방안을 다각도로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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