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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못 이룬 히말라야 꿈, 바우길 370㎞로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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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산귀신 45년’ 이기호

권혁재의 사람사진/ 이기호 강릉바우길 사무국장

권혁재의 사람사진/ 이기호 강릉바우길 사무국장

“산귀신이 들었어요. 산귀신이요.”
이기호 강릉바우길 사무국장이 스무 살 무렵 들은 어머니의 넋두리다.

그가 산귀신이 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건 대학 산악부에 들면서부터였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산악부에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확 빠져버렸어요.
늘 여름과 겨울엔 빠짐없이 설악산으로 갔죠.
당시 거기서 세계의 산을 주름잡게 된 엄홍길 대장과 어울렸고요.
이리 사서 고생한 이유는 히말라야에 태극기 꽂는 꿈을 품었기 때문이죠.
엄 대장이야 수도 없이 태극기를 흔들고 꽂았지만,
저는 결국 히말라야 8000m에서 태극기를 흔들지 못했죠. 하하.”

해 뜨는 동해를 등대고 강릉 바우길은 산과, 강과,마을과 우리의 이야기를 따라 길이 나 있다.

해 뜨는 동해를 등대고 강릉 바우길은 산과, 강과,마을과 우리의 이야기를 따라 길이 나 있다.

히말라야에 태극기 꽂는 꿈은 못 이뤘지만, 그는 여태도 산에 오른다.
강릉바우길 사무국장으로서 길을 내고, 길을 다듬고 있는 게다.
그간 그가 낸 길은 바우길 17개 구간 240㎞, 대관령 국민의 숲길 9.8㎞,
울트라 바우길 100㎞, 계곡 바우길 20.5㎞이다.
2009년부터 시작하여 만들어낸 게 자그마치 총 370.3㎞인 게다.

개중 어느 길이  당신의 마음으로 난 길이냐는 우문을 그에게 던졌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어디 안 아픈 손가락이 있습니까.
한 구간마다 대충 70번은 걸은 듯합니다.
그런데도 매번 걸을 때마다 새로운 길을 걸은 듯합니다.”

이기호 사무국장은 지금 걷고 있는 바우길 17구간 안반데기 운유길을 '길과 배추와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한 편의 영화'와 다름없다고 했다.

이기호 사무국장은 지금 걷고 있는 바우길 17구간 안반데기 운유길을 '길과 배추와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한 편의 영화'와 다름없다고 했다.

한 코스당 대략 70번을 걸은 그의 길 철학은 남다르다.
“길도 영화와 같습니다. 이 모퉁이 돌면 무엇이 있을까.
이 길 끝엔 어떤 이야기기 있을까 하는 기대를 줘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늘 새 이야기를 찾아내 그 이야기를 잇고 이은 게 바우길입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명맥만 남았던 대관령 옛길, 이기호 사무국장은 바우길로 이어지게 했다. 이 길이 바로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걸어온 길이다. 이렇듯 길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명맥만 남았던 대관령 옛길, 이기호 사무국장은 바우길로 이어지게 했다. 이 길이 바로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걸어온 길이다. 이렇듯 길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길이 그대로이지 않고 진화하는 이유였다.
동해를 등에 대고 강원도 전체를 향하여 부채 방향으로 나아가는 바우길,
이 길을 만들어내고, 다듬어가니 그를 두고 ‘바우길 개척자’라 하는 게다.

최근 그가 길 이야기 『바우길부터 걸어서 지구를 진동시켜라』 를 냈다.
산 귀신이 든 스무 살 무렵부터 치면 45년,

히말라야에 태극기는 못 꽂았지만, 바우길에서 지구를 흔들고 있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