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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하나 새로 만들면 기존 두 건은 폐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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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내 기업에 적용되는 규제를 해외 선진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성장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 코스닥협회(코스닥협) 등 국내 경제 5단체는 20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한 기업 제도개선 세미나’를 공동으로 열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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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용 상장협 회장은 개회사에서 “과거 외환위기 당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를 해소한다면서 각종 기업규제가 도입됐지만, 이제 이런 제도가 글로벌 시장에서 뛰고 있는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경제단체는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업 제도 전반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날 경제계는 ‘원 인, 투 아웃(One-in, Two-out : 새 규제 하나를 도입하면 기존 규제 두 건을 폐지해야 한다)’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 밝힌 과잉입법 해소, 규제 혁파와 뜻을 같이한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정부의 규제개혁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운영되는 ‘일몰 규제’는 총 1830건으로 이 중 제도의 취지대로 폐지(沒)된 규제는 단 8건뿐이다. 폐지되지 않은 규제 중 개선된 건 325건이며, 무려 78%에 달하는 1422건의 규제가 계속 남아있다. 지난 2015년 3년 뒤 폐지를 전제로 만든 ‘대형마트 출점규제’가 2025년까지 연장된 게 대표적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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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적용되는 세금제도 역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G7(주요 7개국) 등과 차이를 보인다. 이수원 대한상의 팀장은 “한국 법인세의 복잡한 과세체계는 기업 성장과 투자를 저해하고 인위적인 기업분할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며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해 법인세 과표구간을 단순화하고 세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OECD 회원국 대부분은 단일세율이지만, 한국은 4단계의 과표구간을 거치며 누진세율을 적용받는다. 전체 세금에서 차지하는 법인세 비중도 한국은 17.4%로, OECD 평균(12.9%)과 G7 평균 (10.8%)보다 크게 높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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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기업 세대교체와 맞물려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상속세도 도마 위에 올랐다. 대다수 선진국은 상속인별로 실제 취득하는 재산가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 취득세’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고인이 남긴 유산총액을 기준으로 모든 상속인에게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유산세’ 방식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인 15%보다 무려 35%포인트 높다.

특히 기업의 상속세는 대부분 주식과 지분인데, 이런 자산을 매각하면서 경영권이 흔들리고 투자나 기술개발(R&D)에 쓰일 돈이 제때 투입되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일례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미약품의 오너 일가는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난 7월 사모펀드에 보유 지분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인력이 퇴사했고 업계에선 국내 제약기업 중 독자 기술력을 확보했던 원동력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샘과 락앤락도 상속세 부담으로 회사를 해외 사모펀드에 넘겼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각국의 기업 규제가 진화 중이고 우리 경제도 성숙기로 진입하는 만큼, 규제 타당성과 현실 부합성을 보다 신중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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