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日유학 때 키운 이건희 첫 강아지 ‘한국이’…반려견 문화 바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그의 반려견 한국이. 이 선대회장은 일본 유학시절 아버지 이병철 창업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개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 삼성전자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그의 반려견 한국이. 이 선대회장은 일본 유학시절 아버지 이병철 창업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개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 삼성전자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개를 처음 키우기 시작한 것은 일본 유학 시절로 전해진다. 1953년 이병철 창업회장은 자녀들이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판단에 초등학교 5학년이던 이 선대회장을 일본에 유학시켰다.

이 창업회장은 어린 나이에 홀로 일본에서 떨어져 지내는 아들이 안쓰러워 사업차 일본에 가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를 이 선대회장에 선물했다고 한다.

가족과 고국이 그리웠던 이 선대회장은 강아지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한국이는 타향살이를 달래는 따뜻한 위로가 됐다. 이때부터 개는 이 선대회장의 ‘평생의 동반자’가 된다. 한때 200마리가 넘는 개를 키울 정도로 애견가였던 이건희 선대회장의 첫사랑은 ‘한국이’였던 셈이다.

20일 시각장애인에 빛을 선사한 삼성 안내견학교 사업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으며 이 선대회장과 삼성의 남다른 ‘동물 사랑’이 다시 한번 조명 받고 있다.

이건희 없이 진돗개도 없었다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프츠 도그쇼'에 나간 진돗개. 사진 삼성전자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프츠 도그쇼'에 나간 진돗개. 사진 삼성전자

오늘날 진돗개의 원산지가 한국으로 인정받게 된 것도 이 선대회장의 공이 크다. 그는 중앙일보 이사로 있던 1969년 진도를 찾아 당시 거의 멸종 단계였던 진돗개 30마리를 입양했다. 세계견종협회가 진돗개의 원산지가 한국인 것도, 확실한 진돗개 순종(純種)이 있다는 것도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접한 직후였다. 자칫 순종 진돗개의 명맥 자체가 끊길 수도 있었다.

그는 당시 사흘간 진도 곳곳을 누비며 30마리의 진돗개를 들여와 300마리까지 늘렸다. 이후 10년 만에 진돗개 순종 한 쌍을 얻었다. 사육사와 온종일 연구하고 외국의 전문가들까지 수소문해 연구한 결과다. 이후 순종률은 80%까지 올라갔다.

이 선대회장은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견종 종합전시대회에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직접 가져가 선보였다. 이를 계기로 진돗개는 마침내 세계견종협회에 원산지를 한국으로 등록하게 된다. 2005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 애견 협회인 영국 견종협회 켄넬클럽에도 진돗개가 정식 품종으로 등록됐다.

2005년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스트 도그쇼'에 마련된 삼성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05년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스트 도그쇼'에 마련된 삼성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진돗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선대회장은 “더는 내가 할 일이 없다”며 관련 사업에서 손을 뗐고, 이후 진돗개는 지금까지도 한국 고유의 견종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사랑을 받고 있다.

국가 이미지 개선...한국 애견문화 탄생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 선대회장은 한국이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이라는 부정적인 해외의 시선을 바꾸는 데에도 앞장섰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세계동물보호협회(WSPA)와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은 항의 시위를 계획하고 한국산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 광고까지 게재하면서 한국의 개 식용 문화를 비판했다.

이에 이 선대회장은 IFAW 임원진을 직접 서울로 초청해 애완견 연구센터와 안내견학교 신축 현장 등을 견학시키며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는 데 일조한다. 이 무렵 국내 애견문화가 비로소 탄생,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예비 안내견들. 사진 삼성전자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예비 안내견들. 사진 삼성전자

“마누라 빼고 다 바꿔보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내놓은 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삼성 안내견학교를 설립, 개인적 취미를 공공의 영역으로까지 넓혔다. ‘한국이’에서 시작된 동물 사랑이 결국 남을 돕는 일로 열매를 맺은 셈이다.

이 선대회장은 생전 자신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나는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취미를 통해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