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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허은아가 소리내다

진보 'PC주의' 역설…신동엽·싸이·화사도 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허은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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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태초에 마광수가 있었다. 무려 30년 전인 1992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자신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에 해당한다며 강의 도중 경찰에 체포됐다. '야한' 소설을 창작했다는 이유로 대학교수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대 사건이었다. 정치영역이 아닌 문화영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큰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최초의 사례였다.

마광수 징역형 이후 진전 없어 #올바름 추구, 표현의 자유 위협 #국가 개입 최소화 원칙도 흔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왔을까.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서만큼 우리 사회는, 특히 우리 정치는 몇 발짝 내딛지 못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SNI 방식의 ’https 차단‘은 여전히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성인 사이트를 전면 차단하는 나라는 현재까지도 중국이 유일하다.

하물며 국민MC 신동엽씨는 일본의 성인문화를 소개하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촬영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진행하던 방송에서 하차하라는 요구까지 받았다. JTBC 예능 ‘마녀사냥’ 등에서 수위를 유려하게 넘나드는 유머를 구사해 온 그도 최근 수년간 벌어지고 있는 문화전쟁의 유탄은 피해 갈 수 없었다.

비단 성인문화 만의 일일까. 전 세계적으로도 도처에서 문화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소수자와 약자를 차별하는 표현을 지양하자’는 PC주의 문법과 ‘문화 콘텐츠상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대중적 피로감이 맞부딪치는 양상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올해 개봉한 미 디즈니 사의 영화 ‘인어공주’를 둘러싼 논란이다. 주인공인 인어공주 역으로 유색인종이 캐스팅되자 적잖은 대중적 반발이 일었다. 원작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낯섦을 호소하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디즈니의 대응은 “오 저런… 그건 당신의 문제”라는 마지막 문장의 조롱 섞인 입장문이었다. 다수의 주류 언론도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했다. 대중을 훈계한 대가는 2000억원대 손실의 흥행 참패였다.

K문화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문화전쟁의 예외일 리 없다. 2020년 아이돌그룹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 간호사 코스튬을 한 멤버의 모습이 등장하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성적 대상화”라며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 성명을 내며 소속사를 압박했다. 대중문화 영역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PC주의가 맞붙은 상징적인 사례였다. 결국 소속사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2018년 방영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역시 문화전쟁의 전쟁터가 됐다. 적잖은 평론가들이 ‘중년 남성과 청년 여성의 로맨스를 통해 허황된 자기만족을 구현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미화하는 드라마’라고 혹평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드라마는 중년 남성과 청년 여성의 로맨스로 흐르지도 않았으며 최고 7.4%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까지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가수 싸이의 공연 〈흠뻑쇼〉가 문화전쟁의 도마 위에 올랐다. 회당 300t의 물이 사용된다며 가뭄이 심각한 상황에서 물 낭비라는 비판이었다. 문화전쟁의 양상이 공연 문화에도 적용된 사례였다. 전문가들은 양변기 물을 한번 내릴 때 사용되는 물의 양이 〈흠뻑쇼〉에서 1인당 사용되는 물의 양보다 많다고 설명했지만 무수한 비판 기사가 쏟아지며 싸이 측은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예정대로 〈흠뻑쇼〉는 성황리에 마무리됐지만 1년이 지난 올해 여름에도 비판의 목소리는 기사화되고 있다.

최근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마마무의 멤버이자 가수인 화사다. 당당한 여성의 아이콘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대중 가수는 성인 대상 공연에서의 ‘선정적’ 퍼포먼스를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문화 콘텐츠에 대한 ‘혐오’, ‘성 상품화’, ‘성적 대상화’ 등 PC주의적 문제 제기가 일상화되었을 때 어떤 양상이 펼쳐지는지 여실히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가히 음악, 드라마, 공연을 넘나들며 문화의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주로 PC주의적 문제제기를 하는 쪽이 진보성향의 정치인, 시민단체, 언론이라는 점이다. 과거 문화적 자유주의에 앞장서고 국가 검열에 반대해 왔던 것이 진보 진영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느새 노동 의제를 중심으로 계급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게 된 진보 진영이 중산층 고학력자들이 선호하는 PC 의제에 천착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대로 이에 대한 보수 진영의 입장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갈등의 맥락을 파악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엄밀히 말해 문화전쟁은 주로 진보 진영과 대중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보수 진영에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진보 진영의 규제와 검열에 맞서 문화적 자유를 갈망하는 대중이 마음 내어줄 정치집단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 문화 정책의 슬로건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국가의 지원이 과도하다는 논쟁은 있을지언정 언제나 우리 사회가 지켜왔던 합의는 문화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명제였다. 그렇게 전 세계를 매료시킨 K문화가 탄생했다. 어느덧 치열한 문화전쟁 속에 그 사회적 합의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6년 전 세상을 떠난 마광수 교수를 생각한다. 실형을 선고받아 50% 감액된 연금으로 지냈으며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물론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극과 극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는 더 자유롭게, 더 마음껏 '인간에 대한 이해'를 문화로 풀어낼 이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면 생각도 제한된다”며 “문화 예술에는 치명타”라고 단언하는 래퍼 스윙스의 말처럼, 표현의 자유는 창작자들에게 공기와 같은 요소다. 이 극심한 문화전쟁 속에 얼마나 더 많은 문화 예술인을 잃어야 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복판을 걷게 되는 이유다.

허은아 국민의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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