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전병규가 소리내다

27년 전 오늘 북한 잠수함 침투...전쟁을 잊으면 위태로워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전병규 경일대 특임교수, 예비역 대령

소리내다(Make Some Noi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1996년 9월 18일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에 나타난 북한 잠수함 우리 군이 수색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6년 9월 18일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에 나타난 북한 잠수함 우리 군이 수색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7년 전인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 안인진리 일대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달빛조차 비치지 않았다. 이날 따라 파도가 심해 경계도 평소보다 완화됐다. 필자는 당시 동해안을 지키는 철벽부대(68사단·현 23경비여단)에서 실무 장교(대위)로 근무하고 있었다.

북 공작원 보내다 좌초해 발각 #49일간 소탕 작전에 18명 희생 #안보 위기 돌아보는 계기 돼야

 새벽 2시께 사단 지휘통제실에서 안인진리 바닷가에 ‘불빛이 번쩍했다’며 비상소집을 했다. 이것만으로는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필자는 현장조사팀이 아니었지만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이미 군경합동조사팀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어두운 데다 파도까지 심해 미상의 물체가 바위섬인지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둠에 눈이 적응되자 잠수함의 출입구인 해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주위에 벗어 던진 잠수복과 물갈퀴가 널려 있었다.

 조사팀은 10∼12명이 탑승하는 ‘북한 상어급 잠수함’으로 결론 내렸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잠수함을 타고 온 북한군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오전 10시경 북한군 잠수함이 침투했다는 첫 보도가 나왔다. 조금 지나 안인진리 일대에 기자만 150여 명이 몰려들었다. 언론은 그때까지도 생소한 위성 장비를 활용해 실제 군사작전을 최초로 실시간 보도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 30분경 북한군을 추격하던 장병들이 안인진리에서 서남방 7km 떨어진 청학산(338m) 중턱 무덤가에 쓰러져 있는 북한군 11명을 발견했다. 일부에선 “잠수함의 승조원이 10~12명이니 전원 자살한 것이다”라며 작전 종료를 예상하는 성급한 소리도 나왔다.

 50여명의 기자와 함께 현장에 가니 맨 앞에 1명이 쓰러져 있고 그 뒤에 10명이 총상을 입은 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 정보분석팀은 처음에 전원 자살한 것으로 판단하다가 주변에 흩어진 수십발의 탄피를 보고 타살임을 간파했다.

 이때 주민 신고를 받은 경찰이 승조원인 이광수를 생포했다. 천운이 따랐다. 이광수는 “잠수함을 개조하여 26명이 탑승했다. 공작원들이 도주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승조원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동료까지 죽이는 북한군의 잔학상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섬뜩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당시 현장은 처참했지만 언론은 북한군의 주검을 모자이크 처리해 보도했다. 필자는 27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현장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북한군 14명이 도주하는 상황에서 특전사도 투입됐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지만, 용감한 전우들을 보며 필자는 북한군의 은거 예상 지역을 향해 투항 권유 방송을 계속했다.

 18명 사망, 27명 부상. 이 작전으로 입은 아군의 피해다. 장병 12명 비롯해 경찰 1명과 예비군 1명,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전사한 장병 중엔 필자의 룸메이트도 있었다. 이제 전사한 전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해마다 동해안을 지키는 부대는 ‘리멤버 1996년’ 이라는 적 도발 대비 훈련을 한다.

 해마다 가을이 찾아올 때쯤 필자는 강릉시 안인진리에 간다. 올해는 조금 일찍 여름의 끝자락에 다녀왔다. 이번에도 작전지역을 답사할 때 북한군을 소탕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험준한 산으로 뛰어들던 전우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전사한 전우들이 떠오를 땐 가슴 아프다. 유가족들도 이맘때쯤이면 슬픔에 잠길 것이다.

 당시 49일간 하루 평균 4만3000명, 연인원 200만 명이 작전에 투입됐다. 이 작전은 돌아볼수록 많은 깨우침을 준다. 아쉬움과 자부심이 교차한다. 당시 군 수뇌부도 초기 대응의 실패를 인정했다. 이유가 어떻든 침투 현장에서 바로 작전을 종결하지 못하고 49일 동안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이 작전이 크게 조명되지 않는 것 같다. 젊은 세대 중엔 이 사건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기억하고 교훈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장병들과 경찰, 예비군 그리고 작전에 협조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최초 택시기사가 경찰에 신고한 것은 물론이고, 작전 종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도 주민 신고였다. 이는 민·관·군경·소방의 통합방위 작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 사례다. 국가안보에는 여야와 너와 내가 따로 없다. 모두 힘을 합쳐야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

북한이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진수했다고 8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진수식을 지켜보는 모습. 함교 부분에 10개 가량의 SLBM 수직 발사관이 있다. 하지만 합참 관계자는 “외형 분석 결과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진수했다고 8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진수식을 지켜보는 모습. 함교 부분에 10개 가량의 SLBM 수직 발사관이 있다. 하지만 합참 관계자는 “외형 분석 결과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7년이 지났지만 한반도 주변의 안보 위기는 높아만 간다. 지난 13일 북한의 김정은이 러시아로 가서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북한의 탄약과 러시아의 무기 기술 거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한은 1996년엔 상어급 잠수함을 이용해 침투하다가 잠수함이 좌초되었다. 하지만 이제 북한은 수중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공격형 잠수함을 진수했다. 잠수함의 성능에 대한 사실관계를 떠나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 위협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27년 전 9월 18일. 북한군이 잠수함으로 강릉 안인진리로 침투한 것을 상기하면서 “천하가 비록 편안해진다 해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움이 온다”는 사마양저(중국 춘추시대의 명장)의 명언이 새삼 가슴을 친다.

전병규 경일대 특임교수, 예비역 대령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