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임장혁의 시선

‘엘리트 이균용’에 기대하는 반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사회부장·변호사

임장혁 사회부장·변호사

“정치 편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8월 16일자 조선일보 사설), “21세기 ‘원님 재판’”(8월 21일자 문화일보 ‘오후여담’)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가 여당 중진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자 일부 보수 언론은 일제히 박 판사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대부분의 공세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부부싸움 끝에 권씨(권양숙 여사)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한 정 의원의 표현이 노 전 대통령과 그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는지와 징역 6개월의 처벌이 합당한지는 논외였다.

그럴만했다. 검찰이 약식기소한 사건을 굳이 정식 재판에 올리고, 검찰의 구형(벌금 500만원)보다 센 실형을 선고한 것 자체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미리 준비라도 해둔 듯 박 판사의 SNS에선 그의 ‘정치성향’을 금세 알 수 있는 글이 잔뜩 발견됐다.

‘박병곤 현상’은 사법불신 대변
‘재판속도 회복=신뢰회복’ 의문
배심원제 확대 계기로 삼아야

대부분의 비판은 ‘박병곤 현상’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귀결로 몰았다. 만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뒤를 이어 보수 엘리트가 법원 권력을 수성했다면 정 의원은 생환했을까. 판사 3명에게서 모두 “아마 그랬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개연성 높은 상상에 근거한 답변이다.

박 판사는 SNS에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고 적었을 때(2021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후) 이미 ‘물의 야기 법관’ 명단에 올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2년 뒤 서울중앙지법 입성은 언감생심. 천운으로 지금 그 자리에 앉았더라도 이번과 같은 결기를 보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진석 사건’은 검찰에겐 오랜 계륵이었다. 최근 검사 옷을 벗은 인사는 ‘죄는 되지만 그렇다고 윤석열 선배와 가까운 4선 중진의 정치생명을 끊을 일이냐는 기류 때문에 다들 못 본 척하던 사건’이라고 귀띔했다. ‘4년 만의 약식 기소’ 자체가 노심초사의 흔적이다.

정보력이 좋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라면 검찰 내 분위기를 이미 알고 관심 사건 목록에 올렸을 것이다. 때로는 심의관이 재판을 방청하거나 행정처 수뇌부가 중앙지법 형사수석에게 전화로 걱정을 털어놓는 일도 있을 법한 일이다.

‘박병곤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묻고 싶다. 이를 위해 법원은 과거로 돌아가야 할까. 같은 질문을 윤석열 대통령이 받는다면 “절대 아니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보수 엘리트가 장악한 법원행정처의 일련의 권력 행동을 ‘사법농단’으로 단죄한 칼이었다. 그의 검찰 후배들은 지난 15일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결심에서 이 사건을 “최고 사법행정권자인 피고인들이 사법정책 추진의 필요성 때문에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의 재판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한 초유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고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 구형.

검찰이 김 대법원장마저 수사선상에 올린 마당에 윤 대통령은 ‘이균용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법관 경력은 없지만 고향·학벌·법조 경력 등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닮은 면이 많다는 점에서 회귀적 선택으로 평가됐다. 법원 안팎에선 “좌편향에 맞선 우편향”이라는 냉기류가 흐른다.

하지만 이 후보자의 인사 청문 답변서를 보면서 떠오른 단어는 ‘다행’이다. 그는 사법부가 앓고 있는 병명(신뢰 위기)과 그 심각성(기능부전 임박)을 정확히 짚었다. 문제는 대안이 법관 증원, 상고심사제 도입 등 재판 속도 개선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김 대법원장이 손 놓은 새 재판 지연이 신뢰 추락의 최대 원인이 된 건 맞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속도를 회복하면 그만큼 신뢰도 커질까.

아니라고 본다. ‘혁명’인지 ‘쿠데타’인지 모를 방식으로 법원 내 주도 세력 교체가 두 번 진행되는 동안 잃은 것은 속도만이 아니다. 사법체계를 지탱해 온 불편부당의 신화 자체가 재건 불가능한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이젠 검사나 정치인조차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불편부당 신화의 뿌리인 법관의 무결성이 허상이란 걸 누구나 안다. 새로운 정당성의 원천을 찾지 못한다면 ‘신뢰 회복’의 기치는 신기루로 판명 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다른 길은 하나뿐이다. 배심제의 확대. 완벽한 대안이라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법관 무결의 신화를 대체할 유일한 근원은 시민의 상식이 아닐까. 국민참여재판이란 이름의 훈련을 시작한 지 15년이 흘렀다. 법관 하나 늘리는 것도 세금이 아깝다는 국민이지만 재판에 민주적 정당성을 불어넣겠다면 곳간을 풀어줄지 모른다. 그 총대를 ‘엘리트 이균용’이 멘다면 대반전(大反轉)으로 기록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