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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도우면 바보" 더 세진 트럼프 독설…한국도 예외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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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캐피털 힐튼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캐피털 힐튼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내년 11월 치르는 미국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재대결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갈수록 세지는 ‘트럼프 화법 시즌2’에 지구촌이 긴장하고 있다. 외교안보·무역·이주민 등 정책 현안은 물론 당 내 경쟁자를 겨냥한 특유의 독설이 대통령 재임 때보다 강도가 세졌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등장했던 추종자들의 ‘트럼피즘(Trumpism)’이 다시 거세지는 가운데 ‘트럼프 집권 1기’를 경험했던 동맹국들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트럼피즘은 크게 세 축이 뼈대를 이룬다. 정치적으로는 2016년 대선 슬로건으로 처음 등장해 이제는 열성적 지지세력의 상징으로 진화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외교안보에선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경제·산업 정책에서는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다.

기소 두고 “모두 악마 같은 사람들”

정치·이념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극한의 당파적 대립에 기반한 선동적인 발언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왔다. 지난 17일 미 NBC 방송 인터뷰에서 거듭 주장한 ‘2020년 대선 사기론’이 대표적이다. 성추문 입막음 혐의, 기밀문서 반출 혐의, 1ㆍ6 국회의사당 난입사태 조장 혐의, 2020년 대선 조지아주 선거 결과 뒤집기 혐의 등으로 총 네 차례 기소된 그는 NBC 인터뷰에서 자신을 옥죄고 있는 검찰 수사를 거론하며 “미국이 지금 민주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했다.

성관계 입막음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된 것과 관련해선 “그(바이든 대통령)가 맨해튼 검찰에 측근을 보냈다. 이들은 모두 악마 같은 사람들”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정치 보복' 의사도 숨기지 않는다. 지난 8월 말 보수 성향 인터넷 매체에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겠느냐’는 질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민주당 정부)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공화당 내 경쟁자까지 독설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 첫 TV 토론회가 열린 지난달 23일 토론회 참석 대신 보수 논객 터커 칼슨과 인터뷰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을 두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힐난했다. 아울러 공화당 경선 주자인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아사 허친슨 전 아칸소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를 놓고는 “후보 자리에 있어선 안 될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들의 첫 TV 토론회가 열린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토론회에 불참하는 대신 보수 성향의 전직 앵커 터커 칼슨과 인터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터뷰 영상이 스트리밍 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들의 첫 TV 토론회가 열린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토론회에 불참하는 대신 보수 성향의 전직 앵커 터커 칼슨과 인터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터뷰 영상이 스트리밍 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대만 돕겠다 하면 거저 주는 바보”

외교·안보 분야에서 트럼프는 기존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넘어 바이든 정부 대외 전략의 전면 폐기까지 언급하고 있다. 미 NBC 인터뷰에서 자신이 재집권하면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미군을 보내겠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그런 기조 속에 나온 발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군의 군사적 개입을 수 차례 공언했다. 트럼프는 “그렇게 말하면 거저 주는 것이다. 바보 같은 사람들만 그렇게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역 안보 현안을 비즈니스 대상으로 삼는 듯한 인식이다.

또한 대북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선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듯한 발언도 여러 차례 해 왔다. 지난 4월 법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에서는 “내가 북한을 상대하지 않았다면 ‘핵 대학살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핵전쟁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고 자랑하듯 말한 대목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도 우크라이나의 영토 회복 등과는 무관하게 전쟁 당사국 간 타협을 통해 전쟁을 끝내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런 트럼프를 향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2일 동방경제포럼에서 “트럼프를 기소한 것을 보면 미국 정치 체제가 썩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호응했다. 물론 바이든 정부는 과거 트럼프식 접근이 실패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5일 전임 트럼프 정부를 겨냥해 “북한에 관해 이전 정부는 정상급 외교에만 관여하면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안일하게 대처해 화를 키웠다는 취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 원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 원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 때문에 트럼프의 재집권 시 동맹국 대외 정책이 다시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당시 한국과 일본에 안보 비용 5배 증액을 요구하며 압박한 적 있다.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 부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일방적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발언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달 17일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외국 기업들이 자기 제품을 미국에 덤프(dump, 적정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면 10% 자동 관세를 해야 한다. 모두 10%를 내는 게 좋다”고 말해 산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모든 수입품 10% 관세’ 도입 시 세계 경제에 혼란을 초래하고 트럼프 정부 당시 겪었던 무역 분쟁을 넘어서는 갈등이 야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조세재단은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가 부과되면 미 소비자들에게 연간 3000억 달러(약 390조 원)의 비용을 초래하고 55만 개의 일자리를 잃게 될 뿐더러 경제성장률을 약 0.7%포인트 낮추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의 사회 분야 발언도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봉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지난달 23일 터커 칼슨 인터뷰에서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최우선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불법 이민자 문제를 첫손에 꼽았다. 트럼프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미국에 들어온 수백, 수천 명의 범죄자를 잡아내 자기 나라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치안 강화를 이유로 노숙인들을 도시 외곽으로 내보내고 불심검문을 부활시키겠다고도 했다.

‘트럼프 불가론’에도 독주 구도 굳건

집권 때보다도 강경해진 트럼프에 ‘반작용’도 커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 에반 로 등 민주당 의원 9명은 18일 주 법무장관에게 “내년 대선 투표용지에 트럼프 이름을 삭제해야 하는지 법원 의견을 구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 법학계 등에선 내란에 관여한 자가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한 수정헌법 14조를 근거로 ‘1·6 의사당 난입을 선동한 트럼프는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역대 미 대통령을 기념하는 재단·센터·도서관 등 13곳이 공동 성명을 통해 “선출된 공직자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사실상 트럼프를 향한 공개 비판에 가깝다.

그럼에도 공화당 내 경선 레이스에서 트럼프의 아성은 굳건하다. 각종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50~60%대를 유지하며 2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의 격차를 갈수록 벌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27일 열리는 공화당 대선 경선 2차 토론회에도 불참하는 대신 미시간주 파업 노동자들과 면담할 예정이라고 한다.

워싱턴 정가의 관심은 이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다.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군에는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엘리스 스테파니크 하원의원,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 팀 스콧 상원의원, 비벡 라마스와미 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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