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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글로벌 아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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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 주말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었다. 외딴 섬에 초대받은 열 명의 손님이 하나씩 사라지는 미스터리 작품이다. 소설 전반부에 각자의 비밀을 축음기의 레코드가 공개한 뒤 “법정에 선 피고 여러분 할 말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이후 동요의 가사 순서대로 사건이 벌어진다. “열 꼬마 병정이 밥을 먹으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렸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사건의 전모는 손님으로 분장했던 범인이 남긴 편지로 밝혀진다.

지난 8일 람 이매뉴얼 주일본 미국 대사가 SNS에 크리스티의 소설을 언급했다. 중국의 친강(秦剛) 외교부장, 리위차오(李玉超) 로켓군 사령관에 이어 리상푸(李尙福) 국방부장까지 사라졌다면서다. 일주일이 흘렀다. 리 부장의 ‘실종’은 세계 유력지 1면에 실리는 빅뉴스가 됐다. 도대체 중국 지도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지난 6월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이 마이크를 점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6월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이 마이크를 점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조는 지난 7월 하순에 나타났다. 20~21일 베이징에서 ‘전군 당 건설 회의’가 5년 만에 소집됐다. 리 부장과 장유샤(張又俠) 군사위 제1부주석이 이례적으로 불참했다. 25일 친 부장의 면직이 확정됐다. 26일 중앙군사위가 군 납품 관련 비리를 신고하도록 지시했다. 파벌결성, 사적 유착, 기밀누설까지 고발 대상에 포함했다. 단순 부패적발이 아니라는 의미다. 시기도 2017년 10월 이후로 특정했다. 리 부장이 장유샤 후임으로 장비발전부장에 취임한 2017년 9월 직후다. 과녁을 조준했던 셈이다. 31일 리 로켓군 사령관이 끝내 교체됐다.

친강이 마지막 모습을 드러냈던 6월 25일도 의미심장하다. 러시아 용병조직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킨 바로 다음 날이었다. 두 달 뒤인 8월 24일 프리고진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중국인은 1971년 9월 린뱌오(林彪) 추락사를 떠올렸다. 1969년 4월 9차 당 대회에서 통과한 당장(黨章·당 헌법)에 “린뱌오 동지는 마오쩌둥 동지의 친밀한 전우이자 후계자”를 명기한 지 2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오 시대에는 이인자조차 안전할 수 없었다.

핵미사일을 다루는 로켓군의 지휘부 쇄신에 이어 고위 간부 자제인 홍이대(紅二代) 배경의 리 부장까지 사라졌다. 중국군이 시 주석의 군대로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다. 대만을 겨냥했다는 ‘분투목표’ 달성 시한인 홍군 창설 100주년까지 4년이 채 남지 않았다.

소설 후반 배라 클레이슨은 벽난로 위 마지막 병정 인형을 손에 쥔 채 되뇐다. “그가 결혼을 하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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