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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수 펑크…역대 최대 59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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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해 정부 예산에서 국세 수입(세수)이 59조원가량 부족할 전망이다. 역대 최대 규모 ‘세수 펑크’다. 정부는 세계잉여금과 외국환평형관리기금(외평기금) 같은 여유 재원을 활용해 재정을 집행, 경기 변동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18일 ‘국세 수입재추계’ 결과를 발표하며 올해 세수를 기존 세입 예산(400조5000억원)보다 59조1000억원 줄어든 341조4000억원으로 전망했다. 기존보다 14.8% 내려 잡았다. 법인세(-25조4000억원), 소득세(-17조7000억원), 부가가치세(-9조3000억원) 등 ‘3대 세목’이 모두 기존 예상보다 감소한 결과다. 이 밖에 상속증여세(-3조3000억원)·개별소비세(-1조2000억원) 등이 감소했고, 증권거래세(+6조5000억원)는 증가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대내외 경제 여건이 급격히 나빠졌다”며 “수출 부진에 따라 기업 영업이익이 감소해 법인세 세수가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돌았고, 부동산 등 자산시장 위축에 따라 소득세 세수가 줄어든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세수 결손은 예고된 사태였다. 올해 들어 줄곧 세수가 예상에 못 미쳤다. 1∼7월 국세 수입은 217조6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43조4000억원 덜 걷혔다. 남은 5개월간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세금을 걷더라도 세수가 48조원 부족하다. 정부는 하반기 세수 감소 폭이 더 늘어난다고 봤다.

문제는 14.8%에 달하는 세수 오차율이다. 2000∼2009년 세수 오차율은 4.0%였다. 2010∼2019년도 4.8% 수준으로 비슷했다.

법인·소득세 43조 급감…수출 부진·부동산시장 위축 여파

추경호 경제부총리(가운데)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 둔화 흐름이 일부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1]

추경호 경제부총리(가운데)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 둔화 흐름이 일부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1]

그런데 2010~2022년 6.2%로 올랐다. 2021년 17.8%(61조3000억원), 지난해 13.3%(52조5000억원) 대규모 오차를 기록한 영향을 받았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코로나19와 세계경제 위축 영향 등으로 미국·일본이 큰 폭의 세수 감소에 직면하는 등 주요국들도 세수 변동 폭이 확대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이 3년 연속 두 자릿수대 오차율을 기록한 건 1988~1990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지난 2년간은 대규모 세수 초과였지만 올해는 세수 결손이다. 코로나19 같은 돌발 상황 때문에 세수 추계가 어려웠다고도 보기 어렵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규모 오차는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며 “세수가 늘 경우 예상보다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세수가 줄 경우 재정 지출을 강제로 줄여야 한다”고 우려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대규모 세수 부족에도 정부는 가용 재원을 활용해 민생과 경제활력 지원 등 재정사업을 차질없이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지난해 결산 이후 남은 세계잉여금(약 4조원)과 환율을 방어할 때 쓰는 외평기금 등 기금 여유 재원(약 24조원), 예산으로 편성했지만 쓰지 않는 불용(不用, 2022년 7조9000억원)을 활용한다. 세금 수익 감소에 연동해 줄어드는 지방교부금(약 23조원)은 재정안정화기금(34조원)을 활용해 보전하기로 했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대신 모든 수를 다 썼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추경을 편성하면) 국가채무가 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이 늘어난다. 국가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서 “세계잉여금이나 기금여유자금을 활용하면 국가채무와 재정수지 악화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런 방향에서 이러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그만큼 기존 예산 운용의 궤에서 벗어났다. 예컨대 외평기금 여윳돈으로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빌린 돈을 미리 갚아 재원을 마련하는 식의 대응을 두고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환 방파제’를 허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신중범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원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통해 추가로 재원을 투입할 수 있는 만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여력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지출을 줄일 경우 올해 1%대 수준으로 쪼그라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세수 결손이 발생하자 추경 대신 불용을 선택했는데, 정부의 성장기여도(0.4%포인트)가 전년 대비 반 토막 났다. 이에 대해 정정훈 실장은 “다양한 재정 대응으로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복되는 대규모 세수 오차를 줄이기 위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세수 추계 과정에 국내 전문가 참여를 늘리고 국회예산정책처와 협업을 강화해 세수 추계 모형을 정교하게 가다듬기로 했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년 하반기 경제 변수를 세입 예산에 반영할 수 있도록 세수 추계 시점을 연말로 늦추고, 세수 전망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혜정 국회예산정책처 조세분석심의관은 “예상치 못한 초과 세수가 발생했을 때 기금을 적립해 경제가 안 좋은 침체기에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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