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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방해 학생, 교장실 보냈더니...'교권회복 조치' 또다른 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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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권 회복을 위한 대책으로 이달부터 적용된 ‘학생생활지도고시’를 놓고 일선 학교 관계자들이 고민을 호소하고 있다. 고시에 맞춰 교칙을 개정하다 보니 실제 교육 현실에 온전히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교사들이 고충을 호소하는 고시는 교사-학생 분리, 물품 압수, 과제 부여 등의 조치다. 교원단체 일각에서는 관련 인력과 예산이 지원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학생 분리, 소지품 압수…누가, 어떻게 하나

지난 1일 교육부가 공개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는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 범위를 담고 있다. 교사는 학습권을 침해하는 학생에게 반성문 등의 과제를 낼 수 있다. 휴대폰처럼 수업에 방해되는 물품도 압수할 수 있게 됐다. 긴급한 경우 학생을 교실에서 내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구체적인 방법은 각 학교가 교칙으로 정하도록 했다. 각 학교는 다음 달 31일까지 고시 내용에 따라 바뀐 교칙을 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수업을 방해한 학생의 교실 밖 분리 조치(6항)가 포함된 12조와 관련, 일선 교사들은 “벌써부터 교사-학생 분리 업무 담당을 놓고 떠넘기기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 교사는 “교장이 수업 방해 학생을 교장실에 보냈다가 정서적 학대로 신고당한 교사 사례를 회의 때 언급하더라. 분리 장소를 교장실로 하면 안 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국회 앞 집회에 참석한 한 교사는 발언대에서 “교장실에 학생을 보내면 자기는 출장 가겠다는 교장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사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학생 분리의 책임을 관리자인 교장·교감이 져야 하며 관련 예산, 인력도 지원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장 교사와 부총리가 함께 만드는 교육정책을 주제로 열린 제1차 부총리-현장 교원과의 대화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장 교사와 부총리가 함께 만드는 교육정책을 주제로 열린 제1차 부총리-현장 교원과의 대화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퇴실 조치 이후의 안전도 고민거리다. 고시 12조 7항에 따르면 두 번 이상 교실 분리를 해도 지속적으로 학습권을 침해하는 학생은 학교가 부모에게 귀가를 요청할 수 있다. 경기도의 한 초등 교감은 “부모가 직장에 있어 학생을 인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을 내보낸다면 학교가 학생을 방치하는 셈이 될 테고, 보내지 못하면 고시가 실효성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지품 압수를 다룬 12조 9항 역시 구체적인 물품 목록이나 분리 방법은 학칙으로 정하도록 했다. 세종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우리 학교는 주의를 2회 이상 줬음에도 말을 듣지 않으면 압수하는 방향으로 교칙 개정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수업 종료 후엔 압수한 물품을 다시 되돌려주겠다고 한다. 지도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성문이나 벌청소 등 훈계에 따른 과제도 그 적용 범위를 놓고 논란이다. 고시 13조 3항에 따라 교사는 문제 행동을 시정하기 위한 대안 행동, 성찰하는 글쓰기(반성문), 훼손된 시설에 대한 원상복구 등을 과제로 제시할 수 있다. 여기엔 청소도 포함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기가 어지른 것을 치우는 정도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지각했다고 청소를 시키는 등 훈계 사유와 관련 없는 청소를 하게 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학교폭력 가해자를 선도, 교육할 목적으로 내리는 조치 중 하나도 청소(교내봉사, 3호)다. 과도하지 않으면 벌청소를 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의 방식이라면 고시에 나와 있지 않은 훈육 행위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교칙 바꿔도 아동학대 논란은 여전”

전국 교사들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에서 국회를 향해 교권 회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전국 교사들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에서 국회를 향해 교권 회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교칙을 바꾸더라도 교사들이 아동학대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의 한 사립 초등학교에서는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에게 벌 청소를 시킨 교사를 학부모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 학교 측은 “학기 초 교실 청소 규칙을 정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안내했다”며 정당한 훈육이었다는 입장이다.

교사 출신의 전수민 변호사는 “교칙이 아동학대법 등의 상위법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교육청 단위의 재심에서조차 교칙을 넘어선 주장이 받아들여진다. 한 고교에서 ‘흡연 3회 이상이면 퇴학’이라는 규칙에 따라 학생을 퇴학시켰는데 이것이 과도하다는 학생 측의 주장이 수용되더라”라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교육부, 교육청 단위의 가이드라인, 해설서가 빨리 내려와야 학교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현장 요구를 반영한 고시 해설서를 배포하겠다. 관련 인력·예산 지원에 대해서도 교육청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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