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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밀착과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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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었을 때 모두 경악했다. 그러나 유럽 한구석의 전쟁이 이렇게 빨리 한반도의 위험 요인으로 다가온 것은 더욱 놀랍다. 지난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고위 인사들을 데리고 러시아의 최신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도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탄약과 무기를 지원하고, 러시아는 인공위성·핵추진잠수함 등 첨단 기술을 북한에 제공하기로 거래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푸틴 회담, 안보에 위협
북·러 거래는 안보리 결의 위반
한·미·일, 신중하게 대책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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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안보에 커다란 위협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안보 질서를 교란하는 위험한 거래다. 1980년대 중반 소련은 북한에 대규모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기술 지원을 약속했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의도가 분명했기에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은 인공위성 기술 협력을 시인하면서 민수용으로 위장하려 했지만, 민수용과 군사용을 분리할 수 없다. 북·러의 재래식 무기거래는 물론이고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관련 기술 이전이 실제 이뤄진다면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을 완전히 잃는 것이다. 러시아가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봉쇄하는 차원을 넘어 기존의 안보리 결정을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중·러 협력이 부상한 상황에서 북·러의 민감한 군사협력은 중국의 입장을 매우 불편하게 할 것이다. 러시아는 당장에라도 북한에 석유와 식량을 지원할 수 있겠지만, 민감한 미사일 및 핵무기 관련 기술을 얼마나 넘겨받을 것인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조가 변경되는 상황을 중국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약소국이 자신을 위협할 수 있도록 핵무기와 미사일 체계의 완성을 도와주는 것이 과연 러시아와 중국에 무슨 전략적 이득이 될지 의문이다. 다급해진 러시아가 북한의 탄약과 무기를 지원받으면 이는 러시아의 장기적·전략적 이익을 크게 손상할 것이 분명하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미·일 3국은 더 결속하되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4월 개최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2의 한·미 동맹조약’에 버금가는 ‘워싱턴 선언’이 채택됐다. 한·미동맹 강화는 한·일 관계 개선이 없이는 어려운 것이 지정학적 현실이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전략은 항상 원만한 한·일 관계를 전제로 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국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일본과의 수교 교섭을 추진하도록 강하게 요청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한·일 관계의 원만한 유지를 위해 노력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부통령 재직 시절에도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8월의 캠프 데이비드 회담이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큰 그림의 역사성은 시야를 좀 더 멀리 잡아야만 보인다.

북·러 무기거래를 저지할 수단은 우리 혼자 힘으로는 매우 벅찬 일이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안보 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 최근의 한반도 주변 정세가 구한말 상황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가 한때 나라를 잃어버린 것은 국제정세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에도 기인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혼자 주변 강대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을 지켜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도 우리가 미국의 도움으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섰기 때문이다. 지금 참담한 북한의 실상을 보면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물론 우리의 국력은 구한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신장했다. 구한말에는 강대국들에 휘둘리는 ‘체스판의 말’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강대국들과 지정학적 ‘체스 게임’을 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뿐 아니라 주요 20개국(G20)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 당당히 참석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어깨가 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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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