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지방 살리기는 자치와 분권에 달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권경석 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부위원장·리셋코리아 지방자치분과장

권경석 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부위원장·리셋코리아 지방자치분과장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역대 정부는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며 수도권 과대·과밀 억제와 소멸 위기의 지방 살리기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지역 균형발전에 역점을 두고 지방자치 분권, 세종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등을 중점적으로 해왔다. 하지만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인구는 2019년 9월 기준 전국 인구(5170만 9000명)의 50%를 사상 처음 돌파했고 지금도 증가세다. 반면 지방은 인구 유출과 저출산·고령화로 공동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역대 정부 “지방 살려야” 외쳐도
수도·충청권 팽창, 영·호남 위축
공공기관 2차 이전 재검토해야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2018년에 나온 ‘한국의 지방소멸 보고서’는 앞으로 30년 안에 시·군·구와 읍·면·동의 40% 소멸을 예고했다. 역대 정부의 지방 살리기 노력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근본 원인은 권한의 중앙정부 집중에 있다. 수도권에는 인재·재원·정보·첨단기술·주요기업 등 중추 관리기능의 80%가 몰려 있다. 수도권은 지방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결국 지방 살리기의 핵심 과제는 지방자치·분권이다. 지방이 잘하는 중앙 권한은 지방에 이양해 지방정부가 특성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지방발전을 주도하게 해줘야 한다. 그동안 중앙 권한을 지속해서 지방에 이양해 왔지만, 자치권은 아직도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중앙의 음성적 간섭과 통제가 살아 있고, 제도적으로도 기관 위임사무와 공동사무 등은 권한과 책임 한계가 모호해 지방의 중앙 의존과 책임 전가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9월 새만금 잼버리 대회 파행은 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뼈아픈 사례다.

2006년 건설에 착수한 세종시는 2012년 7월 1일 인구 10만700명의 세종특별자치시로 출범해 지난해 38만3591명으로 급증했다. 출범 이후 10년간 28만 명 넘게 늘었고, 수도권 인구도 지난해 1년간 3만7000명이 증가했다. 전국 4대 권역의 인구 이동 추이에서 나타난 세종시 건설 효과를 보면 수도권·중부권(충청권)의 팽창, 영·호남권은 인구 감소로 양극화가 확대되는 추세다. 영·호남권은 세종시 출범으로 행정 효율과 주민 편익 측면에서 시간·경비 부담과 번거로움만 늘어났다고 불평한다.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 1차 사업은 2005년에 착수해 2019년까지 153개 공공기관의 이전을 완료했다. 시·도에 이전된 공공기관과 산·학·연·관은 서로 협력해 미래형 성장거점인 혁신도시 10개를 조성했다. 이전 사업의 목표는 혁신거점도시·특성화도시·친환경녹색도시·교육문화도시 등 네 가지 특색 있는 도시 건설이었다.

사업계획 발표 당시 “산업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강제 이전” “수도권 역차별론” 등 반발이 강했지만, 기관 운영이 정착 단계를 거치면서 지방세수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도가 높아지고 제조업 및 서비스 업종의 고용이 늘어났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혁신도시 주변의 신·구 지역 갈등, 지식기반 산업의 구인난, 소속 임직원들의 나 홀로 지방 이주, 기관별 서울 출장소 별도 운영 등 경영효율 저하 사례들로 경쟁력이 약화했다.

최근에는 이전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제도가 논란이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해당 시·도의 고교와 대학 졸업자를 전체의 30% 이상 채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소재 지역에 한정된 특정 대학 동문이 최대 89%에 이르는 극심한 쏠림 현상으로 파벌화가 우려되므로 기준을 권역 단위로 확대할 것을 권고한다.

결론적으로 지방 살리기의 기본전제는 실질적인 지방분권이다. 세종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중앙권한의 공간적 이동이다. 따라서 지방 살리기를 위한 본질적 처방은 첫째, 자율적인 지방자치권 행사 보장이다. 자치권에 대한 중앙의 부당한 개입 근거부터 없애고, 권한과 책임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은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권역별 맞춤형 기업유치·일자리·의료·교육문화·여가활용 여건의 개선 사무에 우선해야 한다. 셋째,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1차 사업 성과와 실패 요인을 근거로 개선과 보완에 중점을 두되 2차 사업 추진은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경석 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부위원장·리셋코리아 지방자치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