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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2.95명의 마을은 뭐가 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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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일본 오카야마현 나기마을(奈義町·나기초)엔 ‘나기 차일드 홈’이라는 공간이 있다. 일종의 ‘공유 보육원’ 개념이다. 여러 장난감과 오락시설이 있는 공간에 아이를 데리고 오면 다른 집 부모나 아이들과 같이 놀 수 있고, 상주하는 보육교사나 지역 주민들은 아이를 함께 돌본다. 지난 15일 이곳에는 생후 18개월 딸과 함께 온 아버지 하타 쇼타로(26)가 있었다.

하타는 3개월 전 나기마을로 이사 온 이후 자녀 계획이 바뀌었다. 그는 “아이를 더 낳아야겠다 이런 생각은 많이 없었는데 이 마을에 와보니 자녀가 3~4명씩 되는 가정이 많더라”며 “그걸 보면서 1명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도 얘기해 추가로 자녀를 낳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나기마을 에서 딸을 안고 있는 하타 쇼타로(26). 정진호 기자

일본 나기마을 에서 딸을 안고 있는 하타 쇼타로(26). 정진호 기자

일본은 지난해 출생아 수가 역대 처음으로 80만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합계출산율은 1.26명을 기록했다. 한국의 지난해 출산율(0.78명)보다는 높다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출산 지원 대책을 쏟아낸 ‘저출산 선배’다. 일본의 출산율은 이미 1970년대 1명대로 떨어졌고, 아이를 적게 낳는 풍토는 뿌리내렸다.

나기마을의 출산율은 2명이 넘는다. 2019년엔 2.95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내 지자체 중 1등이다. 이 마을의 출산 지원금은 10만엔(약 90만원)으로, 서울 중구(100만원·첫째 기준)보다 적다. 하타의 자녀계획을 바꾼 건 마을과 이웃의 분위기다. 자녀를 낳는 걸 주변에서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그런 환경이다.

2008년 방영을 시작한 TV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는 연예인의 설렘 가득한 가상 결혼 생활을 소재로 한다. 인기를 끌던 이 프로그램은 2017년 종영했다. 연예인 아버지가 자녀와 떠나는 1박2일의 여행을 소재로 한 ‘아빠 어디가’는 2013년 방영을 시작했다가 2015년 끝났다. 같은 해(2013년) 첫 방송을 한 ‘나 혼자 산다’는 여전히 인기다.

반(反)결혼, 반(反)출산 트렌드는 점차 강화하는 모양새다.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금쪽같은 내 새끼’, ‘고딩엄빠’까지 결혼 생활은 그 자체로 지옥으로 묘사된다. 아이를 낳아 자녀를 기르는 일은 골칫거리로 나온다. 통제가 안 되는 폭력적인 자녀로 인한 부부 간 갈등은 보편적 소재다. 풋풋한 결혼생활이 차지하던 TV 속 영상은 이렇게 대체됐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극단적 상황은 미혼과 비혼, 딩크(DINK, 아이를 두지 않은 맞벌이 부부)의 합리화 수단이 됐다. 언제부턴가 유튜브나 네이버 댓글은 물론 당장 주변에서도 “결혼하면 손해”라는 말이 들린다. 출산과 육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게 이 시대의 가벼운 농담처럼 쓰인다. 지정학과 인구학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은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에서 한국을 놓고 “시한부 인구구조”라고 진단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라면 분명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