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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중국산 먹구름에…태양광 제조 밸류체인 암흑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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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13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 안에 있는 ‘영농형 태양광’ 실증단지. 약 1980㎡(약 600평) 규모의 논과 밭에 파·배추·벼가 가득 차 있었다. 여느 논밭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작물 위로는 5m가 넘는 기다란 태양광 발전 설비가 우뚝 솟아 있다. 마치 지붕과 울타리처럼 논밭을 감싸고 있어 유리온실을 연상케 했다.

최근 한화솔루션 등 국내 업체들은 농사와 태양광 발전을 병행하는 ‘영농형 태양광’ 등을 실험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의 ‘저가 공세’가 거세지면서 이런 틈새시장을 노려야 할 만큼 국내 태양광 발전 시장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국내 유일의 태양광 모듈 업체인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의 공장 가동률은 올 6월 기준 88%였다. 지난해 말 94.7%에서 6개월 새 6.7%포인트 하락했다. 태양광 밸류체인 중 가장 앞단에 있는 폴리실리콘의 국내 생태계는 ‘사실상 전멸’했다.

17일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누적 설비용량은 최근 5년 새 241%(2018년 5936→2022년 2만213㎿) 증가했고, 누적 발전량은 340%(2018년 2157만7580→2022년 9490만7114㎿h) 증가했다. 하지만 전년 대비 발전량 증가율은 53(2018)→51(2019)→48(2020)→43(2021)→37%(2022년) 등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반면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기 위한 비용은 급등하고 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이 에너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주택용 2㎾급 태양광 발전 설비 단가는 502만6000원으로, 지난해(436만2000원)보다 15%가량 높아졌다. 주택용 3㎾급은 460만9000(2021년)→597만4000원(올해), 건물용 50㎾급은 같은 기간 8167만5000→1억342만3000원으로 각각 올랐다. 한무경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태양광 발전 국내 보급량이 늘어나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 설비 단가가 낮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 예상이 빗나갔다”고 지적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재료비·노무비 등 공사 원가가 다락같이 올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사 원가 상승 원인을 중국산 부품 가격 인상 여파로 본다.

태양광 부품의 대중(對中) 무역적자도 커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셀·모듈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최근 5년 새 3억2711만3000(약 4400억원)→5억9063만 달러(약 7900억원)로 81%가량 증가했다. 폴리실리콘부터 잉곳·웨이퍼→셀·모듈→인버터로 이어지는 태양광 밸류체인 중 중국은 글로벌 셀과 모듈에서 각각 86%·8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각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덕분이다.

중국산 공세에 OCI와 한화솔루션 등은 국내 폴리실리콘 사업에서 철수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태양광 잉곳·웨이퍼를 생산해왔던 웅진에너지는 지난해 파산했다. 셀·모듈 사업을 하던 LG전자는 지난해 사업을 접었고, 현재는 한화솔루션만 남았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올 상반기 태양광 셀·모듈 수출액 중 대미 수출이 98.5%”라며 “국내 태양광 산업의 제조 분야 현실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는 시장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내 기업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미국 등에 진출하면서 살길 찾기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태양광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제조 분야에서 현지화를 확대하고, 태양광 프로젝트 개발 분야로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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