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법부 분쟁해결기능 부전(不全)”… 이균용 “상고심 선별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현재 사법부에 대해 “이대로 간다면 법원의 분쟁해결 기능 부전(不全)에 빠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17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다.

이 후보자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난 6년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현 대법원장의 정책 결과로만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 법원은 재판지연으로 인해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재판지원 중심의 민주적‧수평적 사법행정▶판결서 공개 확대 및 전자소송‧영상재판 확대실시▶장애인 사법접근성 강화 노력 등은 김명수 체제의 긍정적인 면으로 꼽았다.

“역량 부족 판사 임용 우려 안다”… 전담교수 두는 방안도

대법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과 자질로 ①사법권 독립 의지와 용기 ②법의 지배에 대한 신념과 추진력 ③경청, 공감능력을 꼽은 이 후보자는 재판 지연 등을 해결할 방안으로 법관‧재판연구관 증원, 법관 보상체계, 재판제도 효율 개선 등을 제시했다. 이 후보자는 “법관과 법원 직원들의 헌신과 희생을 강요만 하는 건 적절하지도 않고 불가능하며, 장기간 지속될 수도 없다”는 판단을 밝혔다.

법조일원화로 외부에서 경력을 쌓아 들어오는 경력법관의 역량을 강화를 위한 방안도 제안했다. 이 후보자는 “아직 우수 법조인의 지원을 유도할 제도가 없어서, 법관 역량을 갖추지 못한 법조인이 판사로 임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알고 있다”며 “최소 경력이 높아질수록 서면평가로 선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법조경력을 실질적‧심층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 후보자는 “신임법관 연수제도를 체계화하고 더 강화해야 한다”며 “전담 교수가 교육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일관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관 늘리는 게 답 아냐, 상고심 선별해야”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2023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뒤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 김 대법원장은 22일 퇴임식을 갖는다. 2017년 9월 25일 취임한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24일까지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2023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뒤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 김 대법원장은 22일 퇴임식을 갖는다. 2017년 9월 25일 취임한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24일까지다. 연합뉴스

다만 김명수 체제가 시도했던 대법관 증원에는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현재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수가 너무 많아 본래의 대법원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대법관 수를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차원이다. 이 후보자는 “상고심사제 등 상고심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건을 선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우리나라에서 주요 선거와 관련한 (재검표‧무효)소송 등은 대법원으로 직행해 재판하는 단심(單審)제로 진행되는데, 이것 또한 대법원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일본처럼 고등법원에서 1심을 사실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심리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고위법관이 퇴임 후 대형 로펌 등으로 향하는 데 대해 이 후보자는 “대법관 등 고위 공직 출신 법조인이 사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은 사법신뢰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면이 있지만, 경험과 능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것도 직업의 자유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충분한 공익활동의 기회와 상응하는 처우를 제공해, 제도적으로 공익활동을 할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정원 외 원로법관제도를 시행해, 전관변호사의 발생을 차단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이 후보자는 “법관이란 자리는 법률가 인생의 정점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법관직이 많은 돈을 버는 자리로 나가기 위한 디딤돌이 된다면 목표한 진정한 사법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다”고 한 미국 연방대법원 로버츠 대법원장의 발언을 답변자료에 여러 차례 인용했다. 본인은 “법관 퇴임 후 사익을 추구하는 변호사 생활을 하지 않고,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이념 성향에 대해선 “정치적으로 보수나 진보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원칙주의자”라고 답했다. 이 후보자는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명문화하는 문제에 대해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민주적 항쟁으로, 상징적 의미를 고려할 때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기여한 업적은 평가되어야 하나, 민주주의 훼손, 인권 침해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피력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도 있지만 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압수수색 사전심문절차 도입 등에는 공감하는 취지를 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서는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고, 합법적인 행위마저 위축시키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전국 법원에서 발생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공탁 불수리 사건에 대해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향후 대법원의 심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