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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라멘 가게에 '15cm 경사로'...변호사들이 나선 사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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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 라멘 가게 멘야코노하에 설치된 경사로. 이영근 기자

지난 7월 말 라멘 가게 멘야코노하에 설치된 경사로. 이영근 기자

서울 성수동의 일본식 라면 가게 ‘멘야코노하’에는 7월 휠체어 등을 사용하는 이동 약자를 위한 15cm 높이의 철제 경사로가 설치됐다. 공익법률단체 두루의 변호사들이 “설치비 250만원을 우리가 부담할테니 이동약자들을 위한 경사로 설치를 허용해달라”며 가게 주인을 설득한 끝에 이뤄낸 결과물이다. 4년째 가게를 운영 중인 조용진(49)씨는 “전엔 휠체어를 탄 손님이 오면 직원이 돕거나 손님이 발걸음을 돌렸는데, 지금은 유아차도 드나들기 편해 손님층이 다양해졌다”며 좋아했다.

오래된 건물에 이동약자들을 위한 경사로를 놓겠다는 ‘모두의 1층’ 프로젝트는 6월부터 시작됐다. 두루 변호사들은 물론 외부 장애인협동조합과 건축사무소 등도 힘을 합쳤다. 장소는 MZ세대가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면서 구축 건물이 많아 접근성 제약이 큰 성수동 거리가 낙점됐다. 경사로 제작·설치 비용은 아산나눔재단의 지원을 받아 두루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경사로 100개를 놓아보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니 가게 주인들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정다혜 변호사는 “비용을 부담한다고 해도 인테리어와 조화가 되지 않는다거나, 을(乙)인 가게 주인 입장에서 건물주에게 경사로 설치하게 해달라고 말하기 부담스럽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라면 가게 같은 경우엔 다행히 사장님이 허락을 해주셔서 설치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건물주 입장에서도 경사로 설치를 위해선 도로점용허가를 받는 등 번거로운 절차가 문제였다. 두루는 17일까지 성수동 일대 가게 4곳에 경사로를 설치했다.

‘모두의 1층’ 프로젝트는 2018년 ‘1층이 있는 삶’ 소송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당시 두루는 장애인 A씨 등을 대리해 “이동약자를 위한 경사로 등을 설치해달라”며 GS리테일·투썸플레이스·호텔신라 등을 상대로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호텔신라·투썸플레이스 등은 2020년 2월 법원 조정에 따라 시설 개선을 약속했다. 지난해 2월에는 GS리테일을 상대로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 한성수)는 GS리테일에 “2009년 4월 11일 이후 신·증축된 편의점에 이동식 경사로 등을 구비하거나 직원 호출벨을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제도 변화도 이끌어냈다. 정부도 그해 4월 300㎡ 이상 점포에만 경사로 설치를 의무화했던 관련법 시행령을 50㎡ 이상 점포까지 확대하도록 개정했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이 곧바로 실생활의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신축·증축·대수선 등 건물에만 개정 시행령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시 전체 상업용 건물(12만7157동) 가운데, 신·증축 등 용도변경이 된 상업 건물은 6547동으로 전체의 5.13%에 불과하다.

경사로 설치 소송 6년이 지난 2023년,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한계를 보완해보자는 취지다. 두루에서 이사를 맡고 있는 임성택 변호사는 “소송에서 이겼지만 변화가 미미해 안타까웠다. 법이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 실질적 변화를 위해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현실적 어려움도 확인했다. 10월에는 정책·입법 측면의 개선안을 찾아 조례 개정 운동도 벌이겠다”며 “법과 사회 문제를 연결하는 활동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들. 왼쪽부터 김남연, 정다혜, 임성택, 한상원 변호사. 이영근 기자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들. 왼쪽부터 김남연, 정다혜, 임성택, 한상원 변호사. 이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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