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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불 실화범' 몰린 마트 직원…아이스크림이 그를 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트 화재 용의자로 지목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60대 마트 직원이 손에 든 아이스크림 덕분에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영아)는 실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A씨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4월 24일 오후 1시 42분쯤 자신이 일하던 전남 장흥군의 한 마트 옆 공터에서 담배를 피운 뒤 담배꽁초의 불씨를 완전히 끄지 않고 종이박스 주변에 버려 마트 화재를 일으키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마트 측은 공터에 종이박스 등을 보관해왔는데 이곳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고, 이 불은 건물 외벽과 천장 등을 거쳐 마트로 번지면서 마트 건물 일부를 태웠다.

수사기관은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A씨가 불이 나기 10분 전 발화장소 인근을 다녀온 등을 근거로 A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당시 화재현장조사서에는 CCTV 영상에 담배에 불을 붙이며 발화장소로 향하는 사람의 모습이 확인되고, 방화나 전기, 기계적 요인 등 다른 요인으로 인해 발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해 담뱃불에 의한 화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담겼다.

불이 나기 직전 A씨 외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1명도 이 골목을 지나쳤지만, 이 남성이 발화장소 부근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듯한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수사기관은 봤다. CCTV 각도상 발화장소인 골목 안쪽까지 촬영되지는 않았다.

1심은 A씨가 평소 담배를 1시간 30분 간격으로 자주 피우고 담배꽁초를 처리하는 방식, 화재감식 결과 등을 종합해 A씨가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않아 불이 났다고 보고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사건 당시 골목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종이상자를 정리했을 뿐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고 호소하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불이 난) 시간과 장소에서 A씨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CCTV 상 A씨는 1시 39분쯤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마트 출입구를 지나 공터로 갔다. 이후 1분 만에 가게로 돌아온 A씨는 다른 손으로 유리테이프를 챙겨 공터로 돌아갔고, 약 4분 50초 뒤인 1시 46분 다시 마트 내부로 들어오는 모습이 찍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처음 나갈 때 들고 간 아이스크림을 한 입만 베어 문 상태였다"며 "A씨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에도 시간이 소요됐을 것을 보이며, 그 와중에 테이프를 사용해 박스를 정리했다면 시간이 더욱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박스의 양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 정리에 필요했던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약 4분 50초 동안 아이스크림을 먹고 박스를 정리했다는 A씨의 주장은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판시했다.

또 "화재현장조사서 작성자는 'CCTV 영상에서 직원이 담배를 물고 가는 모습이 아니었다면 화재 원인을원인 미상으로 기재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며 "실제로 A씨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라고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건 당시 바람이 상당히 불었고 불씨가 다른 곳에서 날아왔을 가능성이나 다른 화재 원인을 배제할 수 없다"며 "원심판결은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기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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