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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전환 늦고 고급인력 부족, 독일 G7 중 유일 역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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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12면

경고등 켜진 ‘제조업 강국’ 독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하역장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AP=연합뉴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하역장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AP=연합뉴스]

“‘유럽의 병자’라는 독일의 꼬리표가 최근 다시 등장하고 있다”(CNN)

“독일이 ‘유럽의 병자’ 타이틀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블룸버그)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손꼽히는 독일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내수, 수출이 모두 급감하면서 역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3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독일 정부는 올해 경제가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독일 정부가 다음 달 발표 예정인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3%’다. 독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역성장을 예견할 것이라는 얘기다. 4월 정부 전망치는 0.4%였다.

독일은 지난해 4분기부터 성장률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 -0.2%였고, 올해 1분기도 -0.3%였다. 2분기는 0%로 사실상 ‘경기 침체’ 국면에 빠져들었다. 통상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경기 침체로 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G7 중에선 유일하게 독일만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럽 경제를 탄탄하게 떠받들던 독일 경제를 침체에 빠트린 계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독일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천연가스 사용량을 늘려왔는데,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가 상승세를 탔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내수시장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하지만 전문가들은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단지 트리거(방아쇠)였을 뿐 근본적 원인은 시대에 뒤처진 제조업과 노동력 부족 등에 있다고 진단한다. 독일은 자동차를 비롯한 기계 수출이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도 18% 정도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디젤 등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등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독일은 ‘자동차 강국’ 타이틀을 빼앗겼다. 강유덕 한국외대 LT학부 교수는 “폴크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업체는 디젤차에서 워낙 경쟁력이 높았기 때문에 전기차 전환 대응이 다소 늦었다”며 “그 사이 중국이 국가 주도로 전기차 산업을 키워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시장에서 전기차가 주목받으면서 독일의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이 자동차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어 자동차 산업이 부진하자 국가 경제도 덩달아 주춤한 것이다. 홀거 슈미딩 베렌버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은 자동차, 기계 등 경기 민감도가 높은 상품에 특화되어 있는 데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0%로 높아 글로벌 경제 침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2019년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 4위를 차지했던 독일은 지난해 인도, 한국에 밀려 6위로 내려앉았다. 카스텐브제스키 IN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CNN을 통해 “독일은 지난 10년간 어떤 경제 개혁도 하지 않았다”며 “디지털화, 국제 경쟁력 등 모든 국제 순위에서 밀리게 됐고, 이제야 이런 현실에 눈을 뜨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개발(R&D) 투자나 설비는 탄탄하지만 이를 다룰 고급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독일의 성장 가도를 막은 요인 중 하나다. 2000년대 들어 독일은 급진적인 이민정책을 펼쳐 부족한 노동인구를 빠르게 메웠다. 하지만 독일의 예상과는 달리 생산성 향상을 위한 핵심 인력의 유입은 많지 않았다.

김호균 명지대 명예교수는 “프랑스가 출산 장려로 노동력 감소를 막았다면 독일은 이민 정책으로 노동력 감소를 해결했다”며 “하지만 유입된 인력 대다수가 저학력·저숙련 노동자라 생산성 향상엔 큰 효과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주희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독일은 반도체 등 유망 분야의 인력 육성은 이미 늦었다고 판단해 해외 기업을 국내에 유치하는 방식으로 고급인력 부족 현상을 막고 있다”며 “최근 독일 정부가 대만의 TSMC나 미국의 인텔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출시장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것도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7년부터 중국은 독일의 수출대상국 1~3위를 굳건히 지키며 독일의 ‘바이어’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중국 경제 회복이 지연되자 독일 경제 또한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 폭은 코로나19 이후 계속 커졌고, 지난해에는 851억 유로(약 121조16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독일의 GDP 대비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15년 7.6%에서 지난해 2.1%로 크게 둔화했다(국제금융센터). 김주희 교수는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지만 오히려 투자 규모가 매년 늘어났다”며 “중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수출 리스크는 매년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독일의 위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독일의 경제구조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은 27.1%에 이르고,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도 독일보다 심각하다. 지난해 6월부터 대(對)중국 수출은 마이너스가 됐고, 그 여파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3일 보고서를 통해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고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대비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중국은 결국 대체될 수 없는 시장이기에 공급망 위기를 재현하지 않으려면 인도, 동남아시아 등 제3국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며 “독일이 경제 회복을 위해 취하는 각종 시나리오를 ?참고하면 한국 경제 위기 대응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특히 “저출산 문제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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