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색다른 ‘밥집 주인’…식재료가 물감, 밥상에 그림 그리죠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57호 18면

수묵화 전시 여는 한식당 대표

서울 북촌 골목의 작은 한옥 마루에 오르니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방문을 열어젖히니 벽 한가득 또 인왕산이 펼쳐진다. 무여 문봉선 화백의 수묵화다. 고요하고 장중한 그 풍경 옆으로 소담하고 붉은 모란꽃이 한 송이 피었다. 한식당 ‘두레’ 이숙희 대표의 그림이다.

이곳은 9월 12일부터 23일까지 ‘동행, 동행(同行, 洞行)’ 수묵화 전시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북촌 ‘모두의 갤러리’다. 겸재 정선이 사랑하고 그린 인왕산 아래서 겸재의 진경산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무여 문봉선 화백과 2대에 걸쳐 밀양 반가음식의 깊은 맛을 연구하고 있는 ‘두레’ 이숙희 대표, 사제지간의 그림이 서로 이야기를 하듯 걸려 있다.

한식당 ‘두레’ DJ 등 전직 대통령들 단골

밀양 반가음식을 기본으로 하는 한식당 ‘두레’의 이숙희 대표. 최영재 기자

밀양 반가음식을 기본으로 하는 한식당 ‘두레’의 이숙희 대표. 최영재 기자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1층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두레’는 37년 간 인사동 터줏대감이었다. 전통과 현대 미식을 부지런히 연구해 온 이 대표의 열정 덕분에 장안의 내로라하는 예술인과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단골손님으로 드나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이 다 고객이었죠. 요즘 K컬처가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걸 보니 김지하 선생이 20년 전 ‘이념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 아시아가 문화예술의 중심이 될 거다.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요.”

호남의 유명 서예가 선생과의 일화도 재밌다. 어느 날 밥상을 마주한 서예가 선생이 그러더란다. “아가, 밥이 참 싱겁네.” “선생님, 그럼 밥을 어떻게 해드릴까요?” “아따, 간혹 콩이 왔다 갔다 하면 쓰겄냐.” 이야기인즉슨, 콩밥이 좋다는 얘기인데 그 단순한 대화를 이렇게 운율 있게 표현하는 분들이 ‘두레’의 고객이다.

무여 선생과 이숙희 대표의 인연도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묵화의 대가 남천 송수남 선생과 그의 제자인 무여 선생 역시 두레를 자주 찾았던 손님이었다. 두 사람은 2년 전 사제지간으로 새로 연을 맺었다.

한식당 ‘두레’의 이숙희 대표가 그린 수묵담채화 ‘모란’. 최영재 기자

한식당 ‘두레’의 이숙희 대표가 그린 수묵담채화 ‘모란’. 최영재 기자

“10여 년간 민화를 배웠는데, 뭔가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 무여 선생님께 수묵화를 사사 받게 됐죠. 이번 전시도 처음에는 선생님을 위해 준비한 건데 저보고 함께하자시는 거예요. 제가 감히 어떻게 선생님 옆에 서느냐며 사양했지만 계속 권유하셔서 영광스럽게도 함께하게 됐어요.”

평소 무여 선생도 이 대표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남다르다” 칭찬했다. 밥집 사장의 예사롭지 않은 예술가의 끼는 어디서 유래한 건가 물었더니 이 대표는 ‘팔자’라고 했다. 경남 밀양 출신인 아버지는 지방 토호의 아들로 이 대표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한량인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집안이 몰락하고 스물두 살에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왔다. “너무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악착같이 번 돈으로 혜화동에 카페를 차리고, ‘이숙희 토털패션’이라는 옷가게를 열었다. 지인이 하던 밥집을 이어받아 인사동에 ‘두레’를 차린 게 1980년대 중반. “서울로 올라오기 바로 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본격적으로 뭘 배워본 적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혀가 맛을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원칙을 지키는 음식을 만들자’고 쉼 없이 공부하며 꾸려온 게 지금의 ‘두레’다.

MB 가회동 집 개조, 한옥호텔 열기도

스승인 무여 문봉선 화백의 수묵화 ‘인왕산’. [사진 문매헌]

스승인 무여 문봉선 화백의 수묵화 ‘인왕산’. [사진 문매헌]

“한평생 ‘나는 밥집 주인이다’ ‘밥이 나의 중심이다’ 생각하고 살았지만 타고난 운명이 있는 건지 늘 뭔가 허전했어요. 그래서 틈틈이 판소리를 배우고, 살풀이춤을 추고, 민화를 그렸죠.”

밀양 천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학교도 안 가고 단짝 친구와 꽃비를 맞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던 소녀는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멈췄던 예술혼을 다시 불태웠다. 매일 새벽 장보기 시간을 쪼개서 춤을 추고, 소리를 배우고, 시를 읊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30년을 보내면서 밥 하는 과정에도 다 가락과 장단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진득하게 긴 시간 끓여야 하는 곰국을 끓일 때는 진양조장단이 떠오르고, 중불로 줄여서 뜸을 들여야 할 때는 중모리장단이 떠오르고. 이걸 엇갈리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죠.(웃음) 그림을 그릴 때도 한 호흡으로 길게 선을 쫙 뺄 때가 있고, 가다가 멈춰야 할 때가 있죠. 밥도 그림도 소리도 다 이치가 같더란 말이죠.(웃음)”

음식 이야기를 할 때면 ‘춘향가’의 한 대목이, 한복 이야기를 할 때면 ‘흥부가’의 한 대목이 튀어 나온다. 청바지에 무심히 신은 흰 고무신도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흥에 겨운 이 대표도 팬데믹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딱 죽고 싶었다”고 한다. “신기하게 그때 밥상 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어요. 식재료 하나하나가 정말 아름다운 물감이더라고요. 보라색 양배추와 비트, 홍색 고추, 초록색 오이와 호박. 무·배추도 다 제 색이 있잖아요. 모두들 배달음식으로 쓰레기 치우느라 바쁠 때, 밥집 주인답게 제대로 된 자연의 물감으로 밥상 위에 멋진 그림을 그려보자 싶어 지난해 여주에 작은 터를 하나 마련해 장독대에는 12종류 장 항아리를 놓고, 마당에선 농사를 짓고 있어요. 호박을 길러서 밥도 짓고, 좋아하는 호박꽃 그림도 그리니 얼마나 좋은지.(웃음)”

2008년 시작한 한옥 부티크 호텔 ‘취운정’ 문을 닫고 세를 준 것도 팬데믹 때다. 왕이 궁궐을 나설 때 머물렀던 정자 ‘취운정’이 내려다 보이는 가회동의 이 한옥호텔은 코로나 이전 하루 숙박비가 수백만 원도 했던 곳이다. 한옥호텔로 개조하기 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자 시절 1년 8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두레 이숙희가 이명박의 애인이다’ 소문이 돌아서 곤혹도 치렀다. “난 그분과 단둘이 커피 한 잔 마신 적 없고, 한식세계화 사업이 한창일 때도 정작 한식을 하는 나는 청와대에 초청 한 번 받지 못했는데 참 억울하죠.” 취운정은 그렇게 이 대표에게 시련도 줬지만 여전히 많은 걸 꿈꾸게 하는 곳이다.

“일본의 료칸이나 프랑스의 샤토처럼, 한국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그릇, 꽃꽂이, 향 하나까지 정성들여 준비하고 아침이면 마당 쓰는 소리, 밤이면 배롱꽃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돈이 많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전통문화를 알고 사랑해야 가능한 일. 무대에 서 본 적 없지만 스스로를 생활예술가라 부르는 이 대표는 자신의 꿈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