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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소주성' 효과 안나오자…세 달째부터 통계조작 시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추진에도 소득 및 고용 분배 지표가 나아지지 않자 가계동향조사와 같은 핵심 지표를 조작해 발표한 정황이 감사원 조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15일 “문재인 정부가 핵심 경제정책인 ‘소주성’ 효과 입증을 위해 소득과 고용에 대한 통계를 장기간 조작·왜곡했다”고 밝혔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제3별관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제3별관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文정부 출범 두 달 뒤부터 통계 조작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통계청은 분기별로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을 공표하고 있다. 가계동향 조사는 한국 가구의 소득 수준을 보여준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 조작은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 후인 2017년 7월부터 시작됐다. 2010년 이후 계속 증가하던 가계 소득이 2017년 2분기 감소로 전환하면서다.

통계청은 가계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자가 있는 가구’의 소득에 새로운 가중값(취업자가중값)을 추가로 곱해 소득을 올리는 방식으로 전년동기대비 가계소득이 증가한 것처럼 조작했다. 이런 ‘통계 마사지’를 통해 전년 대비 0.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던 가계소득이 1% 오른 결과로 둔갑했다. 통계청은 또 처음에는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만 가중값을 적용했다가 여전히 소득이 감소하자 소득 분포가 불규칙한 ‘자영업자 등을 포함한 전체 취업자’로 확대 적용했다. 감사원은 “표본설계 담당 부서가 가중값이 불안정하단 이유로 반대했지만, 통계작성 부서가 ‘관여 말라’며 강행했다”고 밝혔다. 통계청은 같은 해 3·4분기에도 유사한 방법을 사용해 가계소득 증가율을 부풀렸다.

소주성의 또다른 핵심인 분배 지표도 악화하자 통계 조작이 다시 이어졌다.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배율(상위 20%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으로 값이 클수록 소득분배 불평등 정도가 높음)이 2003년 이후 최악인 6.01로 나오자 통계청은 2017년 2분기부터 임의 적용해온 취업자 가중값을 빼고 다시 계산해 5.95로 공표했다. 이 과정에서 통계청 간부들은 외부 출신 청장이란 이유로 당시 황 청장에게 관련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수석실, 통계청 자료 재가공 

황수경 통계청장이 2018년 6월 29일 대전 통계센터에서 열린 '제4회 국민 삶의 질 측정 포럼'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수경 통계청장이 2018년 6월 29일 대전 통계센터에서 열린 '제4회 국민 삶의 질 측정 포럼'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계청의 통계 조작은 당시 청와대의 압력에 의한 것이란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잇따른 ‘통계 마사지’에도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격차가 역대 최대치로 벌어졌다는 결과가 나오자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감사원에 따르면 ‘소주성’ 설계자로 꼽히는 홍장표 당시 경제수석이 발표 당일인 같은 해 5월 24일 통계청에 ‘통계자료를 다 들고 들어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홍 수석은 노동연구원 소속 연구원에게 자료를 따로 전한 뒤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근로소득 증감을 분석하도록 요청했다. 이때 자료를 받은 이들 중 한 명은 석 달 후 신임 통계청장으로 임명된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이었다.

분석 결과를 받은 경제수석실은 연도별(2016~2018년) 증감률만 계산된 단순 비교로 최저임금 영향을 분석한 적이 없는데도 “개인 근로소득이 하위 10%를 제외하고 모두 증가했고 저임금분위에서 증가율이 더 높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 근로소득 불평등은 개선됐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활용해 그해 5월 3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저임금으로 저임금 근로자 임금이 크게 늘었고, 이는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성과이고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했다.

청장 패싱하고 청와대 지시대로 수정·발표

청와대의 통계 조작은 2분기 가계동향조사 발표를 앞두고 더 대담해졌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2분기 조사 결과 발표(8월 20일) 사흘 전에 통계청 관계자들을 불러 2분기 소득5분위배율 수치가 여전히 악화 추세인 점을 미리 확인했다. 그러면서 일부 분석 결과는 ‘논쟁이 불거진다’며 삭제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표본의 한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 간부들은 청와대가 지시한 수정사항을 반영한 뒤 청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그대로 발표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같은해 8월 26일 황 청장은 경질됐고 강신욱 보사연 연구실장이 새 청장이 됐다. 당시 황 청장은 이임식에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는 말을 남겼다.

일자리수석실, 비정규직 86.7만 증가하자 적극 개입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2019년 9월 15일 서울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근 고용 동향과 전망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2019년 9월 15일 서울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근 고용 동향과 전망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고용 통계의 경우 감사원은 황덕순 당시 일자리수석을 중심으로 청와대가 통계 조작에 개입했다고 봤다. 2019년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비정규직이 전년보다 86만7000명 급증했단 결과가 나왔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인 '비정규직 제로(0)'와 전면 배치되는 흐름이었다. 일자리 수석실은 통계청에 '아주 이례적인, 있을 수 없는 수치'라며 '통계 결과 발표 시 어떤 방식으로든 병행조사 효과를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병행조사는 고용 예상기간을 묻는 질문을 추가하는 조사 방식이다. 질문을 받고 새삼 고용 기간에 대해 고민하게 된 응답자가 스스로를 '기간제 근로자'로 인식해 과거 포착되지 않은 기간제 근로자가 대폭 추가됐다는 게 이른바 '병행조사 효과'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검증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병행효과 추정치가 23만2000명~36만8000명이라고 보고했고, 경제수석실은 “이정도에요?”라며 해당 수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최대가 30만에서 50만이지요?”라며 원하는 숫자를 사실상 제시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병행조사 효과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한 검토나 분석이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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