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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러의 은밀한 거래, 한·미·일 등 국제 공조로 차단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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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 포탄과 러 위성기술 위험천만의 교환

안보에 치명타, 전방위 압박 외교 펼쳐야

실효적인 제재와 함께 중국 카드 검토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각하(Your Excellency)’란 극존칭을 수십 번 썼다. “당신을 존경하는 마음은 절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이런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것조차 영광”이라고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아첨의 걸작’이란 평가를 할 정도였다. 그랬던 김 위원장은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제국주의’ ‘악’으로 지칭하며 “러시아의 성스러운 싸움에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왕따 지도자가 또 다른 왕따 지도자를 만나 4년 전 미국에 한 말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지금 지구촌의 ‘제국주의 국가’가 누구인가.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 세계를 전쟁의 고통에 몰아넣은 러시아 아닌가. 김 위원장의 상황에 따른 말 바꾸기와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보면 그가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사는 인물인지 의아할 뿐이다.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북한의 포탄 등 재래식 무기와 러시아의 첨단 위성·군사 기술을 맞바꾸는 거래가 성사됐을 가능성은 불문가지다. 두 차례 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에 러시아가 기술을 전수하면 북한은 수개월 내 정찰위성을 갖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능이 고도화돼 우리와 미국의 방공망에 큰 위협이 된다.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을 제공한 대가로 낡은 재래식 무기를 첨단화하고 생산도 늘릴 가능성이 커 우려를 더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전략핵잠수함 기술이 북한에 이전되면 미 본토 핵 타격도 가능해져 미국의 확장 억제를 무력화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이토록 위험한 북·러의 거래가 실현되면 대한민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크나큰 재앙이 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틀이 허물어지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급증해 우리는 물론 동북아 안보의 기본 축이 흔들릴 공산이 크다. 정부는 외교적 레버리지를 총동원해 러시아에 대북 거래를 중단토록 압박하는 한편 미·일과 유럽연합 등 동맹·우방을 중심으로 가치연대를 강화하고 공동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늘리고 대러 제재도 강화해 러시아에 대북 군사기술 이전이 ‘손해’임을 깨우치게 하고,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할 포탄의 원료인 질산암모늄 수입선을 옥죄는 등 실효적인 압박책을 추진해야 한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거래는 눈앞의 한시적 이익으로 맺어진 밀월관계다. 단합된 노력을 기울인다면 북·러 밀착을 깨뜨릴 수 있음을 국제사회에 설득해야 한다.

게다가 중국이 북·러 간 밀월을 경계하며 양국의 거래에 거리를 두고 있는 현실도 중요하다. 서울은 워싱턴·도쿄와 공조해 베이징이 북·러의 거래에 견제를 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도 재개 의사를 표명해 연말 개최가 관측되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그 무대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하고 3축(재래식·핵·사이버) 체계도 고도화하는 등 우리 군의 안보 전략도 북·러 밀착을 전기로 새판짜기를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