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과 추억] “재산 줄어도 마음은 커졌다” 1조7000억원 나눈 ‘기부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009년 중앙일보 인터뷰 당시 자신이 설립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보낸 감사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중앙포토]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009년 중앙일보 인터뷰 당시 자신이 설립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보낸 감사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중앙포토]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설립자인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13일 오전 1시48분 숙환으로 타계했다. 100세. 이 명예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사재 1조 7000억원을 장학사업에 기부했다.

1923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마산고를 졸업하고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를 수료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였던 그해 학병으로 끌려가며 옛 소련과 만주 등지에서 고초를 겪었다. 이 명예회장은 소속 부대가 오키나와로 이동하기 위해 한반도에 머물던 도중 해방을 맞았다.

광복 후 정미업으로 사업에 뛰어든 이 명예회장은 1953년 상경해 동대문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1958년에 서울 제기동에 삼영화학공업을 설립하고 플라스틱 사출기 1대로 바가지 등을 생산했다. 현재 삼영화학그룹은 삼영중공업 등 계열사 10여개를 둔 중견 그룹이다. 이 명예회장은 플라스틱 제품을 넘어 전자제품 핵심 소재인 커패시터 필름(축전 및 절연용 필름)으로 진출하는 등 꾸준히 사업 규모를 키웠다. 타계 3주 전까지도 현장을 직접 살폈다고 한다.

이 명예회장은 지난 2000년 개인 재산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에 쾌척한 재산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일제의 강제징집을 경험한 그는 지난 2019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나라가 잘 살아야 국민이 고생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내내 하게 됐다”고 재단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재단은 매년 국내외에서 수백 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지원했다. 이 명예회장은 특히 이공계 분야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난 2008년 출간한 자서전 『정도(正道)』에 “(기부 때마다) 내 재산은 줄어들었지만 내 마음은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재단이 23년간 지원한 학생이 1만2000여 명, 박사학위자가 750명에 각각 이른다.

이 명예회장은 지난 2012년 600억원을 지원해 서울대에 전자도서관을 지었다. 1979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한 그는 2014년 서울대에서 공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2009년에는 사회에 기여하고 장학사업을 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2021년엔 제22회 4·19 문화상을 수상했다. 성균관대에서는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족은 장남 이석준 ㈜삼영 대표이사 회장 등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5일 오전 8시30분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