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푸틴 손 잡은 김정은…'혈맹' 中 아닌 러 찾은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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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고립과 경제난 타개를 위해 손을 잡은 건 혈맹 관계인 중국이 아닌 러시아였다. 중국의 '이유있는 거리두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한 국제사회 무대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옹호하고, 대북 제재의 뒷구멍을 열어주며 북한과의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북·러가 불법적인 무기 거래를 논의하며 밀착을 강화하는 국면에선 '공범'으로 묶이는 상황을 피하려는 듯 거리를 두고 있다. 실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김정은의 이번 러시아 방문 과정에서도 중국은 이를 제3국의 일로만 취급하며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러 정상회담을 위해 지난 10일 오후 전용 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향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러 정상회담을 위해 지난 10일 오후 전용 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향했다. 연합뉴스

"논평 않겠다" 북·러 밀착에 거리두는 中 

특히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벼랑 끝에 몰린 북·러와 달리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관계가 해빙 무드로 진입한 상태다. 오는 11월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미·중 정상회담 개최 여부도 논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러 간 불법적인 무기 거래에 엮이는 건 외교·안보적으로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실제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7일 북·러 무기거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파악하지 않고 있다” “북·러 관계에 관련된 질문에는 논평하지 않겠다”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마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도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 “북한 지도자의 러시아 방문에 관한 일은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스케줄”이라며 상황을 관망하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앙포토

반면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따른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로 벼랑 끝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전략적 제휴에 거리낌이 없었다. 북한 역시 러시아가 내민 손을 잡으며 호응했다. 12일 전용 방탄열차인 ‘태양호’를 타고 러시아에 도착한 김정은은 수일 내에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기거래' 불법 도모하며 손 잡는 북·러

러시아 방문 전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당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러시아 방문 전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당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의 방러 수행단엔 최선희 외무상과 함께 각각 위성·잠수함·포탄 분야를 담당하는 군부 최고위층이 포함됐다. 이번 방러 목적이 무기 거래를 포함한 군사 협력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1718호) 등에 따라 어떤 국가와도 무기를 거래할 수 없다. 이번 정상회담이 사실상 북·러 정상 간의 공식적인 '범죄 모의의 장'처럼 비유되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는 이유다.

북·러 정상이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불법 행위를 도모하는 것은 상호 협력 이외엔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1년 7개월째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탄약·포탄 등 전쟁 물자와 무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북한은 각종 무기를 비축해 둔 상태지만, 인공위성·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잠수함 등 핵 무력 완성을 위한 첨단 기술의 마지막 퍼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위기 때마다 푸틴 찾는 김정은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린 정상회담 연회 도중 대화를 나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린 정상회담 연회 도중 대화를 나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사실 고립무원의 위기 속에 김정은이 중국이 아닌 러시아와 출구 전략을 도모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4월 김정은과 푸틴의 첫 정상회담 역시 ‘하노이 노 딜’ 이후 국면 전환이 필요했던 북한의 전략적 카드로 평가됐다. 당시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의 협상이 결렬되며 대내외적으로 ‘체면’을 구겼고, 비핵화 논의의 방향성을 상실하며 위기 상황을 돌파할 새로운 뒷배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김정은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을 향해 “일방적이고 비선의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비판하며 협상판을 흔들려 했다. 이에 발맞춰 푸틴 대통령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6자 회담 재개를 제안했다. 중·러의 지원을 발판 삼아 북한의 대미 협상 레버리지를 높이고, 러시아는 비핵화 협상 국면에 개입할 명분을 마련하려는 속셈으로 풀이됐다.

'무기-첨단기술' 북·러의 불법적 '윈윈' 

북한은 지난 5월과 지난 8월 두 차례에 걸쳐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지만 연이어 실패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5월과 지난 8월 두 차례에 걸쳐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지만 연이어 실패했다. 연합뉴스

2019년 북·러 정상회담이 열린 계기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결렬이었다면 이번 김정은의 방러는 핵 고도화에 필요한 첨단 기술과 식량난 해결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은 지난 5월에 이어 지난달 24일에도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했다. 국제적 망신일 뿐 아니라 김정은의 ‘핵 무력 완성’ 계획에 대한 내부 동요가 커질 수 있는 치명적 실수였다.  

오는 10월 3차 위성 발사를 앞두고 있는 북한으로선 위성 발사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러시아의 첨단 기술과 노하우가 절실한 상황이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무기가 필요하단 점에서 상황이 급한 건 마찬가지다. 특히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자국의 첨단 기술을 교환하는 비대칭적 거래에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러시아의 다급함을 보여준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러시아가 핵·미사일과 관련한 첨단 기술을 재래식 무기와 맞바꾸는 등가성 떨어지는 거래에 나선 것은 그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진행되는 데 대한 부담과 무기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반면 중국의 경우 자유주의 진영과 경쟁하고 있지만 북·러와 달리 국제적 위상을 생각하는 국가인 만큼, 링을 뛰쳐나가 극단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데 대해선 거리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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