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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생활권 한국에 공항이 24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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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부장

전남 무안국제공항의 별명은 ‘한화갑 공항’이다. DJ정부 실세이자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공항 추진에 앞장서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는 “무안공항은 365일 중 비행기가 못 뜨는 날이 14일~17일인데, 세계적으로 이렇게 공항의 입지가 좋은 곳이 없다”며 성장을 자신했다. 하지만 연간 이용객은 지난해 4만6000명으로, 1999년 사업계획 당시 예측치(857만명)의 0.5%에 불과하다. 최근 5년 새 순손실액은 838억원으로 전국 공항 중 가장 크다.

경북 울진공항의 경우 교통 오지인 탓에 공항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추진됐다. DJ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중권 전 실장이 영향력을 행사해 ‘김중권 공항’으로 불린다. 하지만 취항 항공사를 찾지 못해 2004년 공정률 85%에서 공사를 중단했다. 이곳은 현재 한국항공대 비행훈련원으로 쓰인다. 지금은 군(軍)공항으로만 사용하는 예천공항, 공사 중단 후 배추밭으로 변한 김제공항도 비슷한 이유로 문을 닫았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공항은 총 15개. 10곳은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 여기에 현재 건설이 검토·추진되고 있는 신공항이 새만금·경기남부·서산 등 9곳이다. 계획대로 공사가 진행되면 한국에 24곳의 공항이 생기는 셈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그물망처럼 발달해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인 한국에서 공항이 24곳이나 필요한지 의문이다. 이미 상당수 공항이 이용객이 없어 문을 닫았고, 지금 있는 공항도 ‘유령공항’ ‘고추 말리는 공항’ 등의 오명을 쓰고 있는데, 신공항이 과연 계획대로 활성화될지 걱정이 앞선다.

경제성도 생각해볼 문제다. 잼버리 사태로 논란이 커진 새만금신공항만 해도 직선거리로 10㎞대 거리에 군산공항이 있고, 광주·무안공항과도 차로 1시간대 거리다. 서산신공항도 인천국제공항·청주공항과 멀지 않다. 특히 항공편을 이용할 인구는 해마다 줄고 있다. 경기남부국제신공항을 제외한 8개 공항을 새로 만드는데 추정된 예산만 21조원에 이르는데,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적자 공항은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따른 결과물이다. 경제성을 따지면 들어설 수 없지만, 지역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단골 공약이 됐다. 그간 공항 건설을 밀어붙인 정치인 가운데 만성 적자와 부실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사과한 이는 한명도 없다. 이 좁은 국토에 또 적자 공항의 씨를 뿌릴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적자 공항의 과감한 통폐합을 고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