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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서 나온 광화문 월대 ‘퍼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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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이건희 회장은 이게 광화문 월대(月臺)에서 나온 거란 걸 알았을까?”

지난달 이 회장 유족 측이 1920년대 사라진 서수상(瑞獸像) 두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는 소식에 주변에서 나온 반응이다. 1865년 무렵 경복궁 중건 당시 광화문 앞 어도(御道·임금이 다니는 길)를 장식했던 이들 석조각은 일제의 월대 훼손 이후 100년 만에 돌아왔다. 멀리 있지도 않았다. 1982년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이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개관할 때부터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여점이 기증됐을 땐 빠졌다. 의도한 건 아닌 듯하다. 문화재청 방문 조사 당시 서수상은 야외 정원 차량 출입로 근처에 무심히 놓여 있었다고 하니 제 가치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광화문 월대 서수상(瑞獸像, 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사진 문화재청]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광화문 월대 서수상(瑞獸像, 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사진 문화재청]

어떻게 찾았을까. 지난 3월 온라인 국민신문고로 접수돼 문화재청에 전달된 민원은 “호암미술관에 월대 서수상이 있으니 확인해보라”는 것. 앞서 2년 전 어느 문화재 전문 유튜브 채널(Lost Heritage)이 1910년대 유리건판 사진을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올린 바 있다. 마침 문화재청이 8개월에 걸친 광화문 인근 발굴 조사를 마친 터였다. 여기서 나온 소맷돌(돌계단 옆면의 마감돌) 받침석과 호암 석조각의 이음새가 맞아떨어지자 유족 측은 바로 국가 기증 의향을 밝혔다고 한다.

지금도 웬만한 부유층 자택 정원에 수려한 석등·석상이 있고, 일제강점기 이후 이 같은 석물 수집이 크게 유행했으니 삼성 일가의 소장 역시 자연스럽다. 실제로 이건희 기증품 중엔 부피가 큰 석조 유물이 800여점에 달했는데, 이들 중 200여점이 최근 국립청주박물관 야외 정원에 놓이면서 새로운 볼거리로 탄생했다. 석조각 전문가인 김민규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삼성가에서 입수 당시 서수상의 크기나 조각 수준을 봐서 진귀한 것으로 짐작했겠지만, 광화문 월대 것으로 특정하기엔 사료가 부족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주요 근거인 유리건판 사진이 디지털화된 게 2000년대 후반이고 그 전까지 『조선고적도보』 등에 실린 작은 사진으론 학계의 연구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눈 밝은 갑부가 취향과 안목으로 수집한 석조각이 100년 만에 이뤄지는 광화문 월대 복원의 ‘마지막 퍼즐’이 돼준 셈이다.

개인적으론 의문이 있다. 이미 기능을 다한 옛 궁궐 풍광을 21세기 후손들의 차량 흐름까지 바꾸면서 되살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공사이니 최대한 원형을 복원해서 오랜 역사에 비해 문화유산 볼거리가 많지 않은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단장해주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보존한 윗세대와 희미한 디지털 흔적을 추적해 유물의 정체를 밝혀준 아랫세대 시민에 모두 감사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우리가 가진 것의 가치를 모른다면 또다시 뺏기고 잃어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