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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가을을 남기고 간 뻐꾸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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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곽정식 수필가

곽정식 수필가

진달래 홑꽃잎이 꽃샘추위로 가녀린 몸을 떨 때 논에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보리밭에선 풀 향기가 난다. 또 하루가 다르게 우물가 매실에 살이 오르는 것을 보는 농부는 광에서 농기구를 꺼내 손질한다. 이 무렵 야산 너머에선 어김없이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뻐꾹 뻐꾹’ 하는 2음절 3박자의 뻐꾸기 울음소리는 우리 마음을 설레게도 서글프게도 하다가 숲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뚝 끊긴다. 머나먼 고향으로 되돌아가 우리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서다.

뻐꾸기는 텃새 아닌 여름 철새
남의 둥지에 알 낳는 건 25%뿐
‘뻐꾸기를 날린다’ 둘러싼 오해
먼 길 떠나는 자식에 대한 교육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환경부 철새연구센터는 2020년 뻐꾸기가 여름 철새라는 사실과 함께 그 이동 거리가 무려 1만㎞에 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동 거리가 이처럼 먼 것은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케냐, 심지어 모잠비크에서부터 출발해 인도·미얀마·중국을 거쳐서 날아오기 때문이다. 1만㎞라면 비행기를 타도 ‘자다 깨다’를 두 번은 해야 하는 거리이다.

철새는 보통 더위나 추위를 피해 지구의 종축(縱軸)을 따라서 이동한다. 그런데 뻐꾸기는 이른 봄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모래바람을 피해 지구의 횡축(橫軸)을 따라서 우리나라에 온다.

필자와 친한 한 젊은이는 뻐꾸기가 동아프리카에서 횡축을 따라서 날아오는 여름 철새라는 사실에 짐짓 놀란다. 그런데도 탁란(托卵)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만큼 뻐꾸기는 우리에게 탁란의 아이콘으로 각인돼 있다.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다른 새 둥지에 2주 정도 맡겨서 부화시키는 탁란을 한다. 게다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기 전에 알의 수에서 차이가 나지 않도록 원래 있던 알을 조용히 ‘섭취’한 다음 자신의 알을 여기에 낳는다. 교활하고 사악한 짓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뻐꾸기만 탁란하는 게 아니다. 100여 종의 새가 탁란한다. 더구나 뻐꾸기의 모든 부류가 다 탁란하는 게 아니다. 120종 중에서 30종 정도만 탁란할 뿐인데 우리는 뻐꾸기를 탁란하는 몹쓸 새라고 인식한다.

뻐꾸기는 어째서 탁란을 해야 할까. 뻐꾸기는 장거리 여행 중 여러 곳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힘들고, 다리까지 짧아 알을 부화시키기 어렵다. 게다가 왕복 2만㎞ 여행을 120일에 걸쳐서 하고 나면 기진맥진해진다. 이 상태에서 땅 설고, 물 선 곳에 버젓한 집을 짓는 일은 쉽지 않다. 정착보다 이동에 익숙한 뻐꾸기에겐 집 짓는 기술이 애초부터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뻐꾸기를 비난하다 그 사정을 알고 나면 비난은 곧 동정으로 바뀐다. “탁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구나…” 하고서.

뻐꾸기의 사정을 인간에 빗대어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으면 자식을 입양시켰을까? 뻐꾸기나 인간이나…’ 하고 동정하며 말한다. 어릴 적 뻐꾸기 소리를 듣고 컸다는 할머니가 얼마 전 열린 해외 입양 한인 미술전을 보면서 한 말이다.

사정을 제대로 알아야 동정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뻐꾸기를 어째서 제대로 모를까. 그동안 뻐꾸기 이름을 딴 ‘뻐꾸기시계’와 ‘뻐꾸기 밥솥’이라는 상표를 보아온 데다, 이성을 유혹할 때 쓰는 ‘뻐꾸기를 날린다’는 속어까지 귀에 익숙한 터라 뻐꾸기를 텃새로 오해했다. 여기에 탁란한다는 사실까지 알면 뻐꾸기를 다 아는 것처럼 착각했다. 그래서 뻐꾸기는 친숙하지만 나쁜 새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뻐꾸기가 어째서 다른 새의 둥지를 돌면서 뻐꾸기를 날리는지 뻐꾸기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뻐꾸기는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그들을 다시 동아프리카로 데리고 간다. 어린 것들과 함께 먼 길을 가야 하는 어미로선 남의 둥지에 머무는 새끼들에게 우선 자신들의 언어를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뻐꾸기가 새끼들이 머무는 둥지 주변에서 절절히 울어야 하는 즉, ‘뻐꾸기를 날리는’ 이유이다. 한마디로 자식 교육이 목적이다. 사람들은 뻐꾸기의 이런 사연도 모른 채 멋대로 말뜻을 변질시킨다.

최근 내게서 뻐꾸기의 탁란 이야기를 들었던 한 과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는 뻐꾸기의 탁란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과 기술로만 굴러갈 듯한 실리콘밸리에도 배타적인 네트워크가 생겨납니다. 유대계와 인도계가 그러하지요. 이들은 자기 민족끼리 당겨주고 끌어줍니다. 이제 우리도 미국의 자본과 기술이라는 둥지에 우리의 알들을 과감히 맡겨볼 때가 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한인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이기하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의 빠른 글로벌화를 강조한다. 또 뇌 회로를 연구하는 이진형 교수는 한인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둥지를 제대로 틀 때까지 그들의 아이디어와 도전적인 모험을 응원하고 지원할 때가 되었다. 탁란한 뻐꾸기가 새끼를 끝없이 살피는 것처럼 말이다.

곽정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