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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4%대 예금 재등장, 대출금리 다시 뛰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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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시중은행에서 연 4%대 예금 상품이 재등장하며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여파에 따른 금융권 ‘수신 경쟁’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불법 사금융 피해를 보는 서민이 크게 늘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은행권의 연 4%대 금리(만기 12개월 기준)의 정기예금 상품이 다시 나타났다. SC제일은행의 ‘e-그린세이브예금’(연 4.1%), DGB대구은행의 ‘DGB함께예금’(연 4.05%), BNK부산은행의 ‘더(The) 특판 정기예금’(연 4%) 등이다. 주요 시중은행도 최대 연 3.8% 수준의 예금 상품을 속속 내놨다.

금융권에선 지난해 자금시장을 ‘패닉’으로 몰았던 ‘레고랜드 사태’ 후폭풍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9월 28일 불거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이 얼어붙으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은행은 수신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지난해 7월 연 2.93%였던 예금은행 평균 수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인 지난해 10~12월에 연 4%를 웃돌았다. 은행의 예금 금리가 오르자 고객은 은행에 돈을 많이 맡겼다. 지난해 6월 1928조6373억원 수준이던 예금은행 원화예금 잔액은 같은 해 11월 1973조1725억원으로 불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돈을 빨아들였던 고금리 예금의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뭉칫돈을 두고 다시 은행이 금리 경쟁에 시동을 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올 9월 이후 연말까지 도래할 예금 만기 규모가 100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예금 만기가 대거 도래하며 예금금리 상승이나 은행채 발행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는 3조7794억원 순발행(신규 발행액이 상환액보다 많은 것)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7조4000억원) 이후 가장 많다.

문제는 은행권 수신금리 경쟁 및 은행채 발행 증가 모두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신 금리 상승과 은행채 발행 증가에 따른 은행채 금리 상승은 모두 금융회사 조달 비용 증가로 직결된다”며 “조달 비용이 늘어나면 대출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소기업 대출이 증가하고, 신용위험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법인 파산신청은 724건으로 전년 동기(452건) 대비 60.2% 늘어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6월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2022년도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보다 적거나 비슷하다고 응답한 기업은 51.7%로 집계됐다.

11일 열린 ‘중소기업 구조개선 촉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이배 덕성여대 회계학과 교수는 “고금리 시대에는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라도 일시적으로 재무구조가 약화할 수 있어 선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금리 여파로 불법 사금융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실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6784건을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최근 5년새 가장 많다. 2019년 상반기(2459건)보다 약 2.7배 늘었다. 유형별로 보면 미등록 대부업체 피해가 2561건으로 가장 많았다. 고금리 피해 건수는 2021년 135건이던 것이 지난해엔 1436건, 올 상반기엔 1734건으로 급증했다.

청소년 사이에선 ‘댈입(대리입금)’이나 ‘내구제(나 자신을 구제하는) 대출’이 성행한다. 대리입금은 7일 이내의 단기간에 10만원 이하의 소액을 20~50%에 이르는 고금리로 융통하는 방식인데, 업체가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등에서 청소년에게 접근해 아이돌 콘서트 티켓이나 게임 아이템을 살 돈을 대신 내주고 이자(수고비)와 연체료(지각비)를 받는 식이다. 업체는 보통 20~50%를 수고비로 받아가는데, 연이율로 환산하면 1000%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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