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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 지폐서 검출된 당선자 DNA…조합장선거 836명 재판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A씨가 시켰다니요? 제가 조합원에게 줘야 할 돈을 준 것뿐입니다.”

경남 창녕군에 있는 한 농협의 조합장 A씨와 고교 동창 관계인 B씨는 조합장 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경찰·검찰의 수사를 받는 내내 이런 입장을 고집했다. A씨는 지난 3월 8일 제3회 농협·수협·산림조합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통해 조합장에 당선됐다. B씨는 선거 전 “A가 선거에 나왔으니 도와주자”며 유권자인 조합원에게 현금 1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인정했지만, A씨와의 관련성은 끝까지 부인했다. 실제 현금 다발에서 A씨의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법과학분석과가 현금에 묻은 DNA를 정밀 분석한 결과, 공소시효 완성을 일주일 앞두고 극적으로 A씨의 DNA가 검출됐다. 현금을 꾹 눌러야 남는 지문과는 달리 살짝만 스쳐도 묻는 땀이나 미세 각질을 통해 DNA 검출에 성공한 것이다. 창원지검 밀양지청은 지난 8일 A씨와 B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법정에서 징역형이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되면 A씨는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에 따라 당선이 무효 처리된다.

지난 3월 8일 치러진 제3회 전국 농협·수협·산림조합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포스터. 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난 3월 8일 치러진 제3회 전국 농협·수협·산림조합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포스터. 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검찰청은 제3회 조합장선거 선거사범을 수사한 결과 총 1441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836명을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지난 2019년 치러진 제2회 선거 대비 입건 인원은 138명, 기소된 인원은 77명이 늘었다. 이번 선거는 전국 1346곳에서 진행됐으며 등록 후보자 수는 3082명이었다.

적발 유형 중엔 금품선거가 1005명(69.7%)으로 가장 많았다. 이전 선거 대비하면 6.5%p 늘었다. 구속된 33명은 모두 금품선거 혐의가 적용됐다. 경쟁 상대에게 “후보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1억 7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한 당선자 C씨, 현금 675만원 등을 제공해 조합원 13명을 매수한 당선자 D씨, 조합원이나 그 가족 63명에게 1만원권 농협상품권 850장을 뿌린 당선자 E씨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외 유형으로는 흑색선전 137명(9.5%), 사전 선거운동 57명(4.0%), 임원 등의 선거 개입 37명(2.6%) 등이 있었다.

‘금품살포전’ 조합장선거…“검찰 직접수사 못해”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번 제3회 선거까지 세 차례의 조합장선거에선 매번 700~800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를 맡은 검찰 관계자는 “조합장은 1억원 내외의 연봉, 막강한 경영권·인사권에 비해 주어지는 책무는 적은 자리다. 그런데 지역에서 적게는 유권자 1000명, 많아야 1만명 정도의 소규모로 선거가 치러지니 금품 수수 등이 만연한 복마전 양상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 수사팀은 또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이 선거범죄를 직접 수사하기 어려워졌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공소시효(6개월) 완료 한달 정도를 남기고 280명 이상을 집중 송치해, 면밀한 검토를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검수완박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찰은 공직선거법상 금품선거 등 일부 선거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조합장선거는 공직선거법이 아닌 위탁선거법을 적용 받기 때문에 반드시 경찰의 1차 수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검 관계자는 “초동수사부터 검·경 협력을 실질화하고, 6개월짜리 초단기 공소시효 특례 폐지나 기간 연장 등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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