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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무죄에도…‘3대 펀드’ 재수사 첫단추 된 ‘장하성 동생 펀드’

중앙일보

입력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가 지난해 6월 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가 지난해 6월 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사기가 분명한데 왜 이렇게 3년, 4년, 5년이 걸리는지….”
지난 6일 서울 금융감독원 앞에 모인 디스커버리 펀드 사건 피해자들의 말이다. 2019년 4월, 2500억원대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로 발생한 피해자만 1200명이 넘는다. 수년째 온전한 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은 최근 문재인 정부 당시 부실 수사 의혹을 받은 이른바 ‘3대 펀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검찰에 기대를 걸고 있다.

3대 펀드에 대한 검찰 수사는 디스커버리 펀드를 첫 단추로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 단성한)는 장하원(64)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와 김모 전 투자본부장, 김모 전 운용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3대 펀드 사건 재수사가 시작된 이후 핵심 관계자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8일 서울남부지법 김지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일부 혐의가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 있어 보이고,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을 만큼 증거를 계획적으로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장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지낸 장하성 전 주중대사의 친동생이다. 검찰은 장 대표 등이 다수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특정 부실 펀드의 환매대금이 부족해지자 다른 펀드의 자금을 끌고 와 돌려막고 투자자들에게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혐의(특경법 사기, 자본시장법 위반)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도 지난달 24일 추가검사 결과 디스커버리의 펀드 돌려막기 등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검찰은 장 대표가 자신이 투자한 한 회사의 지분 약 25%도 차명으로 부정하게 취득했다고 보고 특경법상 수재 혐의도 추가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막연한 재수사가 아니다. 가시성이 있다”며 “증거를 확보해 수사로 규명해 가는 단계”라고 밝혔다.

1심선 “고의성 증명 안 돼”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장 대표는 이미 일부 디스커버리 펀드와 관련해 부실한 미국 P2P 대출채권에 투자하면서 고수익의 안전한 투자라고 수백 명의 투자자에게 판매해 피해를 준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다만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법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채권 일부가 미국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채권은 맞았지만, 장 대표가 ‘고의성’을 가지고 피해자를 속였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본 것이다.

이에 검찰은 항소를 진행하는 한편, 지난 7월 디스커버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지난달 31일에는 장 대표 등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현재 검찰이 새롭게 수사하는 건 항소심이 진행 중인 사건에선 다뤄지지 않은 남은 펀드들이다.

국책은행서 대규모 판매, 수사도 늦어져 ‘특혜 의혹’

디스커버리 펀드는 판매 초기부터 ‘장하성 동생 펀드’로 불리며 각종 특혜 의혹을 받았다. 장 대표는 지난 2016년 11월 자본금 25억원을 들여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을 설립했다. 이후 2019년 디스커버리 펀드의 미국 현지 운용사 대표가 사기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으며 현지 자산이 동결되기 전인 2019년까지 수천억원대의 천문학적 금액을 운용했다.

신생 중소 자산운용사의 펀드가 국책은행 등 주요 금융사에서 대규모로 판매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또 이들이 만든 펀드를 가장 많이 취급한 기업은행에서조차 상품 검토 당시 내부에서 “펀드의 내용을 고객이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신중하게 판매해야 한다”는 등의 경고음이 나왔다. 펀드가 한창 팔리던 시점은 장하성 전 주중대사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현직 재임하던 시기(2017년 5월~2018년 11월)와 겹친다는 점에서도 의혹을 불렀다. 실제로 장 전 대사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각각 60억여원과 4억여원을 본인과 가족 명의로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금융사들도 “장하성 동생이 만든 펀드”라며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모습. 뉴스1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모습. 뉴스1

2019년 이미 환매가 중단된 펀드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3년이 지난 2021년에야 시작돼 ‘늑장수사’ 논란도 일었다. 검찰은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폐지의 영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3대 펀드 사건 수사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합수단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크게 난다.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움직이는 건 (합수단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합수단은 지난해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1호 지시로 부활했고, 올해 5월엔 합동수사부로 격상됐다.

피해자들, 100% 구제 희망…라임‧옵티머스도 강제수사 진행

환매 중단 사모펀드 피해 규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윤주경 의원실·금융감독원]

환매 중단 사모펀드 피해 규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윤주경 의원실·금융감독원]

검찰 재수사에 피해 구제를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들은 기대감을 보이는 중이다. 지난 6일 IBK기업은행 디스커버리 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는 금융감독원에 재분쟁조정과 피해 구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금감원은 2021년 5월 기업은행이 판매한 디스커버리 펀드 피해 기업 1곳과 일반 투자자 1명에 대해 각각 손해액의 64%, 60%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나머지 투자 피해 사례의 배상 기준은 상황에 따라 손해액의 40~80% 수준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위법사항이 추가로 인정돼 분쟁조정이 다시 이뤄질 경우엔, 비율이 상향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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