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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도 빌드업도 없는 무색무취 전술, 답답한 클린스만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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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호 25면

기우뚱거리는 축구대표팀 사령탑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8일 새벽(한국시간) 열린 웨일스와의 평가전에서 상대 태클을 뚫고 돌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8일 새벽(한국시간) 열린 웨일스와의 평가전에서 상대 태클을 뚫고 돌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클린스만호가 이번에도 첫 승을 거두는 데 실패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8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웨일스의 카디프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일스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 0-0으로 비겼다. 웨일스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5위로 한국(28위)보다 낮다. 이로써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부임 후 치른 5경기에서 3무 2패에 그쳤다. 한국은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치른 지난 3월 콜롬비아전에서 2-2로 비겼고, 우루과이에겐 1-2로 졌다. 지난 6월엔 페루에 0-1로 패했고, 엘살바도르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날 주장 손흥민(토트넘)과 조규성(미트윌란)을 투톱으로 세우고, 이재성(마인츠)과 홍현석(헨트)에게 측면 공격을 맡겼다. 중원은 황인범(즈베즈다)과 박용우(알아인)가 나섰다. 포백 수비 라인에는 이기제(수원)와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정승현·설영우(이상 울산)가 배치됐고, 김승규(알샤바브)가 골문을 지켰다.

한국은 웨일스를 상대로 고전했다.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전반 40분 손흥민이 페널티아크 왼쪽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슈팅이 상대 골키퍼에 잡혔다. 한국의 유일한 유효슈팅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들어 황희찬(울버햄프턴)과 이순민(광주)을 투입하며 분위기 반전에 나섰지만, 공격을 퍼부은 쪽은 오히려 웨일스였다. 후반 20분 키퍼 무어의 헤딩 슛이 골대를 맞고 나왔고, 후반 21분 네이선 브로드헤드의 중거리 슛이 골포스트에 맞았다. 한국은 후반에도 결정적인 득점 찬스 없이 경기를 끝냈다. 슈팅 수에서 웨일스에 4-10으로 크게 밀렸다. 4개 중 3개는 손흥민이 기록했다.

빈약한 공격력보다 더 아쉬운 건 여전히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 ‘클린스만식 축구’였다. 한국은 패스 564개로 웨일스(388개)에 크게 앞섰다. 그러나 큰 의미 없는 수치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밀려 중원에서 불필요한 백패스와 횡패스를 주고받는 횟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전방 패스나 후방에서 안정적인 빌드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최전방의 손흥민이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와 패스를 받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다. 좌우 풀백의 오버래핑에 따른 크로스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클린스만 감독은 공격 전개 방식에 변화를 주지도 않고 90분 내내 같은 전술을 고수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대표팀 감독이 웨일스와의 경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대표팀 감독이 웨일스와의 경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파 주요 선수들이 대표팀 합류 직전 치른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색·무취’에 가까운 전술이었다. 손흥민은 해트트릭을 작성하고 합류했고, 홍현석 역시 멀티 골(2골)을 기록했다. 황희찬(울버햄프턴)도 골 맛을 봤다.

클린스만 감독은 ‘재택근무’ 논란을 잠재우는 데도 실패했다. 부임할 당시 “한국에 상주하겠다”고 밝혔던 것과는 달리 그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지내고 있다. 현지에서 방송에 출연하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등 대표팀 감독 업무와 무관한 일에도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를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원격 근무’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K리그 등 한국 상황은 국내에 남은 코칭스태프를 통해 지속해서 관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웨일스전에서 유럽파, K리거 모두 부진하며 클린스만 감독은 이번에도 지도력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전문가와 팬은 이번 경기를 “졸전에 가까웠다”고 비판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전방 압박을 중시한다든지, 측면을 활용한다든지 등 어떤 축구를 하겠다는 건지 분명치 않은 축구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과정이다. 11월에 시작하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예선과 내년 초 열리는 카타르 아시안컵에 대비해서 선수들을 점검할 좋은 기회”라며 “오늘까지 5경기를 통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관찰했다. 대표팀은 월드컵 사이에 많은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새로운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 세대교체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과정에서 어떤 선수들을 최종 명단에 포함할 지에 대한 고민을 저와 코칭스태프들이 계속 하고 있다.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공·수의 핵심인 손흥민과 김민재는 클린스만 감독을 감쌌다. 손흥민은 경기 후 “보시는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은 단계인 것 같다. 팬은 완성된 모습을 기대하고, 저희도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선수들이 매우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분명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4년 전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님이 계실 때는 또 다른 분위기 속에서 훈련했고, 좋은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천천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려운 경기가 많을수록) 내구력이 생긴다. 감독님이 어떻게 현대 축구를 한국 축구에 잘 입힐 수 있을지, 분명히 공부를 많이 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팬 입장도 공감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중앙 수비수 김민재는 “지난 6월 A매치에 함께하지 못한 사이 선수들도 많이 바뀌었다. 선수들과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뉴캐슬로 이동해 13일 오전 1시 30분 사우디아라비아(FIFA랭킹 54위)를 상대로 다시 한번 첫 승에 도전한다. 사우디는 최근 명장 로베르토 만치니(이탈리아) 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을 사령탑에 선임했다. 김민재는 “다음 경기에서는 꼭 승리해야 한다. 감독님의 요구 사항을 잘 받아들이고, 이를 경기장에서 내보인다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사우디가 좋은 상대라는 건 확실하다. 지난 월드컵에서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꺾는) 엄청나게 큰 이변을 일으킨 팀”이라면서 “팬에게 승리로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 대표팀에 대한 의심을 떨쳐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클린스만 감독은 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첼시(잉글랜드)-바이에른 뮌헨(독일) 레전드 매치에 초청받았으나 참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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