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돌아간 '거지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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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왕초'의 실제 주인공이던 거지왕 김춘삼(78.사진)씨가 26일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김씨는 김두한.이정재.이화룡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던 한국의 '주먹 1세대' 중 한 명이다. 김씨는 8월에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이달 17일 서울 보훈병원으로 옮겨졌다. 만성 폐색성 폐질환에 패혈증까지 겹쳐 석 달간 투병생활을 했다.

1928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난 김씨는 8세 때 대전으로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운명이 바뀌었다. 사냥꾼들에게 붙잡혀 짐승을 유혹하는 미끼 노릇을 시작하면서 '거지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20대에 전국의 거지를 통솔하는 거지왕이 된 그는 새로운 봉사활동에 눈뜨기 시작했다. '거지들이 도둑질이나 일삼아서는 삶의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거지 구제사업에 앞장서면서 전설적 인물이 됐다.

김씨의 선행은 50년대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합심원을 전국 10여 곳에 세우면서부터 시작됐다. 또 '대한 자활개척단' 등을 운영하며 거지들의 자활 터전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특히 거지들의 합동결혼식을 주선해 수많은 부부를 탄생시켜 '거지들의 대부(代父)'로 불리기도 했다. 김씨는 또 50년대 후반에는 자활개척단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국토 개발에 앞장서기도 했다.

김씨는 45세 때 결혼한 15세 연하인 남윤자(63)씨와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10평 남짓한 다세대주택에서 살아 왔다. 생계는 기초생활수급자와 국가유공자 지원금으로 이어 왔다. 장남 흥식씨는 "아버지께서는 가난하셨지만 평소 노숙자 문제와 환경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으셨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청담동 성당에 마련된 빈소에는 환경운동을 함께했던 탤런트 민지환씨와 이상렬 목사, 강원 한국폴리텍 성남대학 학장 등 200여 명의 지인이 찾았다. 김씨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망치' 유재호(62)씨는 "평생 청빈하게 사시면서 늘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신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고 애도했다. 유족은 부인과 2남2녀. 발인은 30일 오전 6시. 02-549-0944.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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