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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미스코리아…특전사 군복 벗고 메달 겨눈 'AG 여전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에 도잔하는 카바디 여자 국가대표 우희준. 특전사, 미스코리아 등 화려한 경력을 가졌다. 전민규 기자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에 도잔하는 카바디 여자 국가대표 우희준. 특전사, 미스코리아 등 화려한 경력을 가졌다. 전민규 기자

"특전사 군복과 맞바꾼 대회예요. 반드시 아시아 정상에 서겠습니다."

카바디 여자 국가대표 우희준(29)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각오다. 이름조차 생소한 카바디는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술래잡기와 레슬링을 합친 듯한 팀 스포츠다. 한국 남자 카바디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 여자 카바디는 아직 메달이 없다.

우희준은 이번이 두 번째 아시안게임이다. 첫 출전이었던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선 5위에 그쳤다. 한국 카바디 최초의 금메달을 꿈꾸는 우희준을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우희준은 "아시아선수권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가장 갖고 싶은 아시안게임만 금메달이 없다. 이번엔 이루겠다"고 밝혔다.

우희준 대한민국 여자 카바디 국가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우희준 대한민국 여자 카바디 국가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주특기인 백킥 시범을 보이는 우희준. 전민규 기자

주특기인 백킥 시범을 보이는 우희준. 전민규 기자

우희준이 대표팀에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 건 불과 두 달 전이다. 이전까지는 군인 신분이었다. 울산대 졸업 후 2020년 학군장교(ROTC) 59기로 임관했다. 2021년부터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근무하다 올해 6월 30일 중위로 전역했다. 군 복무 기간에는 통역 장교로 레바논 파병을 다녀오기도 했다.

체력 테스트에서 '특급'을 받은 데다 미국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 영어 실력도 출중했기 때문이다. 우희준은 "국군체육부대는 카바디 선수를 뽑지 않는다. 아시안게임에 나가는 방법은 전역하는 것 뿐이었다. 카바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고심 끝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설명했다. 진지하게 답변하는 우희준의 말투엔 아직은 군대식 '다나까체'가 남아있었다.

 레바논 파병 시절 우희준(오른쪽). 사진 우희준

레바논 파병 시절 우희준(오른쪽). 사진 우희준

최근 특전사 중위로 복무하다 전역한 우희준. 사진 우희준

최근 특전사 중위로 복무하다 전역한 우희준. 사진 우희준

우희준은 인도에서 카바디를 처음 만났다. 고교를 졸업 후 한국관광공사에 합격해 역사상 첫 고졸 사원이 된 우희준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인도 여행을 떠났다. 첫 여행지였던 뉴델리에서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인도 아이들이 흙바닥에 돌멩이로 선을 그어 코트를 그리고 카바디를 하는 모습이었다. 우희준은 "첫눈에 반했다.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한국에도 카바디가 있더라. '내 강점인 순발력을 살린다면 이 종목 국가대표까지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우희준이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던 것은 경찰로 근무 중인 아버지 우원제 씨(57) 때문이다. 우희준은 "아버지가 강력반 형사 시절 성폭행범을 체포하다 칼에 찔려 배에 10cm 정도 상처가 생긴 적 있다. '그만두라'고 만류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내가 나라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안전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도 이때 '나라를 위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2019 미스코리아 선을 차지한 우희준. 뉴스1

2019 미스코리아 선을 차지한 우희준. 뉴스1

우희준은 "카바디를 알리기 위해 미스코리아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뉴스1

우희준은 "카바디를 알리기 위해 미스코리아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뉴스1

우희준은 귀국하자마자 부산에 있는 카바디협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훈련하고 기술을 배웠다. 카바디를 시작하고 2년 만인 2015년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지금의 우희준은 상대 팀이 경계하는 한국의 에이스 공격수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태권도 훈련받은 데다 초등학교 때 육상 허들 선수, 중·고교 땐 치어리딩 선수로 활약하며 순발력과 균형 감각을 키운 덕분이다.

큰 키(1m72㎝)와 긴 다리(1m10㎝)를 이용한 '백킥'이라는 비밀 무기도 있다. 진천선수촌에는 훈련장이 없어서 현재 지리산 인근 수련원에서 합숙 중이다. 주 6회 하루 네 차례에 걸쳐 약 8시간에 가까운 '지옥 훈련'을 견디고 있다. 우희준은 "액션영화에서 고수가 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는 주인공처럼 매일 미친 듯이 산을 달리고 거친 몸싸움 펼친다. 일요일 하루 쉬는데, 녹초가 돼 외박 나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우희준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아버지께 걸어드리는 게 목표다. 전민규 기자

우희준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아버지께 걸어드리는 게 목표다. 전민규 기자

우희준은 비인기 종목인 카바디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후배들이 대신 지원서를 내서 출전한 201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선으로 뽑혔다. 이어 한국 대표로 ‘미스 어스(earth)’에 참가했다. 우희준은 "후배들이 내 사진을 캡처해서 미스코리아 참가 신청을 했다. 처음엔 황당했는데, 그곳에서 카바디 선수라고 한마디 하는 게 큰 홍보 효과가 있을 것 같아 출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장법을 몰라 뒤늦게 다른 참가자들에게 배우느라 진땀 흘렸다. '카바디 얘기만 하자'고 마음먹었는데, 덜컥 입상까지 해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우희준은 "지난 아시안게임 당시 아버지가 경찰 동료들과 현수막을 만들어 영상통화로 응원해 주셨다. 그 보답으로 이번엔 금메달을 아버지에게 걸어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울산대 ROTC 시절 우희준. 연합뉴스

울산대 ROTC 시절 우희준. 연합뉴스

카바디=술래잡기와 레슬링을 합친 듯한 인도의 전통 팀 스포츠.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부터 정식 종목이 됐다. 한 팀의 출전 선수는 7명이다. 공격수(레이더) 한 명이 수비 진영으로 침투해 상대를 터치한 뒤 자기 진영으로 돌아오면 터치한 상대 선수 숫자만큼 득점한다. 터치 당한 선수는 아웃이다. 레이더가 상대 수비에 막혀 공격 제한 시간 30초 안에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아웃(1실점)이다. 레이더는 상대 진영에서 쉬지 않고 '카바디(힌디어로 '숨을 참는다'는 뜻), 카바디'라고 외쳐야 한다. 멈추면 1실점에 공격권까지 내준다. 남자 경기는 전·후반 각 20분, 여자는 각 1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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