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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쌈박질 거대 양당, 선거 기득권 사수는 한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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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도를 놓고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방안 이야기다. 선거제 개편 협상은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양당 간사가 참여하는 ‘2+2 협의체’가 해왔다. 소수 정당은 끼지도 못했다. 양당은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한 명 뽑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현재 47석인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릴 것인지가 막판 쟁점으로 꼽힌다.

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선거제 개편 협의체 발족식'에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및 정치개혁특위 간사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뉴스1

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선거제 개편 협의체 발족식'에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및 정치개혁특위 간사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20년 실시된 21대 총선에서 ‘위성 정당’ 사태가 벌어졌던 터라 선거제도의 변화는 불가피했다. 21대 총선에 적용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전국 정당 득표율에 미치지 못하면, 비례대표에서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채워주는 제도였다. 사표를 줄이고 다양한 정당의 원내 진출을 도와 거대 양당의 독식을 견제하면서 정치 다양성도 높이는 효과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선 거대 양당 때문에 비판의 대상만 되고 말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019년 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이 주도해 도입됐는데, 제도를 반대했던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까지 위성정당을 창당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여전한 거대 양당 구도였고, 정치 불신만 커졌다.

양당, 권역별 병립형 비례 공감
잇속 타협에 정치 다양성 외면
적대적 공생 막을 제도 찾아야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전국 단위로 뽑아오던 비례대표제를 권역별 선출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그러면서 21대 총선에서 적용한 준연동형은 폐지하고, 과거처럼 병립형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병립형에선 보정 없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눠 갖는다. 헌정 사상 최초의 국회 전원위원회를 열면서 국민의힘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민주당은 ‘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었다. 하지만 각 정당이 유불리를 따지다가 없던 일이 된 셈이다.

 양당이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의견을 모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와 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 등은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야 4당 등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비례성 증진, 대표성 강화라는 선거제 개혁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지지율이 높은 거대 양당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에 비해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는 한다. 영남에서 민주당이, 호남에서 국민의힘이 일부 비례 의석을 얻어 지역 구도를 다소 허물 수 있다. 소수 정당이 특정 권역에서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으면 비례 의석 확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선거제도 전문가들은 “병립형에선 권역별로 비례의원을 배분하더라도 소수 정당의 의석 확보 확률은 매우 낮다”고 지적한다.

 양당은 위성정당의 유혹을 막으려면 준연동형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당은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 입장으로 제안한 적이 있다. 결국 스스로 후퇴한 셈이다. 일부 시뮬레이션 결과 이 제도를 시행하면 국민의힘이 호남에서 얻는 의석보다 민주당이 영남에서 얻는 의석이 많게 나왔다. 반면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민주당에 불리했다. 양당이 각자 손해날 제도를 거부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를 거치는 동안 국민의힘과 민주당 계열의 거대 정당은 극단적으로 대립하기 일쑤였다. 양당의 충돌은 진영 간 대립으로 이어졌고, 지난 대선 역시 초미의 접전으로 끝났다. 대선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공격과 반대가 일상화했을 뿐 타협은 찾아볼 수 없다. 균형추나 중재자 역할을 할 세력 조차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언급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는 극한 대립을 보노라면 거대 양당 기득권에 제동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제도 전문가들은 지역구 정당득표율보다 의석을 더 많이 얻은 정당을 비례 의석 배분에서 제외하고, 정당 득표율 대비 지역구 의석이 적은 정당부터 ‘보정 의석’을 순서대로 나눠주는 방식으로 다양한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는 대안까지 이미 내놓고 있다. 위성정당 역시 양당이 핑곗거리로 삼는 대신 대국민 선언을 하고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다. 아무리 '마이너스의 정치'를 해도 주류에서 밀려날 일이 없는 정당들이 '적대적 공생'을 이어 가지 못하게 하려면 선거제 개편을 두 당의 야합에만 맡겨둬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