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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 조난 당한 그 바다…신혼여행 성지 반전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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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 여행 ② 그림 같은 바다 ‘라 디그’

 세이셸 라디그 섬은 면적이 10㎢에 불과하지만 그림 같은 해변을 곳곳에 숨겨두고 있다. 사진은 앙스 마롱 해변. 영롱한 비췻빛 바다 때깔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세이셸 라디그 섬은 면적이 10㎢에 불과하지만 그림 같은 해변을 곳곳에 숨겨두고 있다. 사진은 앙스 마롱 해변. 영롱한 비췻빛 바다 때깔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비췻빛으로 찰랑이는 바다와 띠처럼 둘린 환초(環礁), 그리고 백사장에 널브러진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바로 세이셸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세이셸에서는 흔한 풍광이지만 홍보 책자나 영상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해변은 따로 있다. ‘라 디그(La digue)’ 섬이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사진발’ 하면 라 디그다. 인천 무의도 크기(10㎢)의 아담한 섬이지만 그림 같은 바다를 곳곳에 품고 있다. 바다도 예뻤지만 자전거 타고 바다를 찾아가는 길, 백사장을 걷고 암벽을 기어오르는 순간도 기막혔다.

주민도, 관광객도 이 섬에선 두바퀴족 

라디그 섬은 주민, 관광객 모두 자전거를 탄다. 섬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라디그 섬은 주민, 관광객 모두 자전거를 탄다. 섬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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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랄린 섬 동쪽 항구에서 ‘캣 로즈’ 호를 타고 15분만에 라 디그에 도착했다. 항구 풍경이 프랄린과 전혀 달랐다. 자동차는 안 보이고 자전거와 전기 카트가 바쁘게 오갔다. 알고 보니 환경 보호를 위해 내연기관차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단다. 자동차는 딱 60대인데 대부분 화물차란다. 카트를 타고 항구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일정을 함께할 가이드를 기다렸다.

라디그는 세이셸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배를 타고 들어간다. 김영희 디자이너

라디그는 세이셸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배를 타고 들어간다. 김영희 디자이너

플리플랍을 신은 채 자전거를 탄 청년이 나타났다. “혹시 당신이 가이드?” 물으니 그렇단다. 집 앞 슈퍼에 과자 사러 나온 차림으로, 이역만리에서 온 여행자를 맞다니 황당했지만 고풍스러운 박물관을 가는 것도 아니고, 고급 식당에서 정찬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섬 남동쪽으로 향했다. 그랑 앙스(Grand anse), 프티 앙스(Petite anse), 앙스 코코(Anse coco) 같은 해변을 찾아다녔다. 하나같이 그림엽서 같은 바다였지만 파도가 세서 들어갈 순 없었다. 거친 파도를 뚫고 물놀이를 즐기는 용감한 청춘도 있었지만 여행객 대부분은 바다를 감상하고 내장기관까지 익힐 듯 강렬한 볕에 몸을 태우는 것으로 만족했다. 가이드 알렉스는 “무역풍이 순한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호수처럼 바다가 잔잔하다”고 말했다.

알다브라 자이언트 거북. 성체는 몸무게가 200kg이 넘는다.

알다브라 자이언트 거북. 성체는 몸무게가 200kg이 넘는다.

다음 목적지는 유니온 이스테이트(L’union Estate). 프랑스 식민 시절 바닐라와 코코넛을 재배했던 농장이었는데 지금은 관광지로 활용 중이다. 200여년 전 건물과 농기구를 볼 수 있고, 바닥에 널브러진 코코넛 열매를 ‘해체’해서 먹기도 한다. 지구에서 가장 큰 거북 ‘알다브라 자이언트 거북’ 수십 마리도 산다. 마다가스카르를 비롯한 인도양 일대에 흔했던 종이었으나 유럽인의 혼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개체 수가 10만 마리로 늘었단다. 세이셸에서는 호텔 마당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녀석, 아니 ‘거북 어르신’을 만날 수 있다. 몸무게는 200~300㎏에 이르고, 지구에서 가장 수명이 길다. 200살 이상 살기도 한단다.

세이셸을 상징하는 '앙스 수스 다정' 해변. 화강암과 백사장, 산호초가 띠처럼 두른 해변이 어우러진 풍경이 압도적이다.

세이셸을 상징하는 '앙스 수스 다정' 해변. 화강암과 백사장, 산호초가 띠처럼 두른 해변이 어우러진 풍경이 압도적이다.

유니온 이스테이트 끄트머리에는 세이셸을 상징하는 해변 ‘앙스 수스 다정(Anse source d’argent)’이 있다. 예술가가 조각한 듯한 화강암 덩어리, 밀가루처럼 하얀 모래, 영롱한 터키색 바닷물이 어우러진 풍광이 여느 바다보다 압도적이었다. 주인공은 단연 바위였다. 해가 기울면서 바위 색이 핑크빛,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돌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촬영지

앙스 마롱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 백사장, 밀림, 화강암을 두루 걷는 길이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앙스 마롱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 백사장, 밀림, 화강암을 두루 걷는 길이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해수욕이나 ‘호캉스’ 말고는 세이셸에서 할 게 없을까. 한국에서부터 궁금했다. 신혼여행객은 별 관심 없겠지만 서구 여행객 사이에서는 하이킹이 인기란다. 세이셸 관광청이 추천한 ‘앙스 마롱 트레일(Anse marron trail)’을 걸어봤다.

앙스 마롱은 바위가 방파제처럼 파도를 막아준다. 천연 풀장이 따로 없다.

앙스 마롱은 바위가 방파제처럼 파도를 막아준다. 천연 풀장이 따로 없다.

오전 9시. 가이드 알릭스(어제 가이드는 알렉스였다)를 만났다. 20대 캐나다 여행객 마리, 옥사나가 함께했다. 한나절을 걸어야 하는데 알릭스 역시 수영복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앙스 송(Anse songe) 해변으로 이동해 걷기 시작했다. 해변을 따라 걷는다 해서 제주올레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야자수 빽빽한 정글, 화강암이 널브러진 돌길, 백사장을 골고루 걸었다. 예상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심했다. 무엇보다 돌길이 힘들었다. 암벽등반 수준은 아니어도 사지를 모두 이용해 바위를 오르고 좁은 바위틈을 포복하듯 기어가야 하는 구간이 많았다. 수시로 신발을 벗고 바닷물을 걷기도 해야 했다. 콧노래 부르며 걷는 길이 아니었다. 알릭스는 “실종, 실족 사고가 빈번한 길인 만큼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변 한편에는 비바람을 피하기 좋은 공간이 있다. 가이드 알릭스가 바위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해변 한편에는 비바람을 피하기 좋은 공간이 있다. 가이드 알릭스가 바위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앙스 마롱 트레일은 보기보다 '매운맛' 걷기 코스였다. 암벽을 기어오르고 허리까지 물에 잠긴 채 걷는 구간도 있었다. 그만큼 스릴이 넘쳤다.

앙스 마롱 트레일은 보기보다 '매운맛' 걷기 코스였다. 암벽을 기어오르고 허리까지 물에 잠긴 채 걷는 구간도 있었다. 그만큼 스릴이 넘쳤다.

두세 시간을 걸어 앙스 마롱에 도착했다. 바위가 방파제처럼 둘러쳐 있는 천연풀장이 나타났다. 여태 봤던 바다보다 훨씬 맑고 찬란한 파랑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챙겨온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열대어를 구경하고 배영 자세로 떠서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알릭스가 차려준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최종 목적지 앙스 수스 다정이 코앞이었으나 갈 수 없었다. 만조 때여서 배낭을 머리에 이고 허리까지 물에 담근 채 걸어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앙스 피에로(Anse pierrot) 해변에서 더는 나갈 수 없었다. 알릭스가 보트를 부르더니 “여기서 영화 ‘캐스트 어웨이(1986년, 영국)’, ‘로빈슨 크루소’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낭만적인 바다에서 잠시 조난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세이셸 라디그 섬에서 만난 새들. 왼쪽은 세이셸 긴꼬리딱새, 오른쪽은 레드 포디. 긴꼬리딱새는 라디그 섬에만 약 100마리 사는 멸종위기종이다. 눈 주위에 파란색 띠가 있다.

세이셸 라디그 섬에서 만난 새들. 왼쪽은 세이셸 긴꼬리딱새, 오른쪽은 레드 포디. 긴꼬리딱새는 라디그 섬에만 약 100마리 사는 멸종위기종이다. 눈 주위에 파란색 띠가 있다.

이틀 동안 바다를 만끽하고 길을 걸으면서 독특한 새도 많이 봤다. 생김새는 참새와 비슷한데 털이 새빨간 ‘레드 포디’, 멸종위기종인 ‘세이셸 불불’, 나는 모습이 우아한 흰꼬리열대새. 무엇보다 가장 신기한 건 ‘세이셸 긴꼬리딱새’였다. 라디그 섬에만 약 100마리 산다는데, 밀림을 걸을 때 어깨 옆으로 긴 꼬리를 휘날리며 휙 지나갔다. 잠깐 마주쳤지만 검은색 몸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파란색 눈과 부리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긴꼬리딱새의 영어 이름은 ‘파라다이스 플라이캐처(Paradise flycatcher)’다. 파라다이스에서 녀석을 만나다니,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세이셸 여행정보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시간 한국보다 5시간 늦다.
날씨 연중 기온 차가 거의 없다. 24~29도 수준.
언어 영어, 프랑스어, 크레올어
화폐 1세이셸루피= 약 100원. 달러와 유로도 통용된다.
항공 한국과 연결된 직항편은 없다. 에미레이트항공, 에티오피아항공을 많이 이용한다. 두바이를 경유하는 게 가장 빠르다. 인천~두바이 10시간, 두바이~세이셸 4시간 30분 소요.
*비자는 필요 없지만 세이셸 정부 웹사이트에서전자여행허가(ETA)를 받아야 한다. 1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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