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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데…인도 또 수출통제 카드 꺼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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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의 쌀 수출 대국인 인도가 물가를 잠재우기 위해 일부 품종의 쌀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단행하면서 전 세계 식량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재집권을 노리는 나렌드라 모디 정권이 내년 봄 총선 표를 의식한 조치라는 풀이가 나온다.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부진까지 겹쳐 아시아권의 주식인 쌀 수급이 위기 상황에 몰린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식량 위기가 안보 위기로 확산된 2008년의 전처를 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가 최근 연이어 쌀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하면서 세계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가 최근 연이어 쌀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하면서 세계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로이터=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과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인도 상무부는 이날 바스마티 품종 쌀을 1t당 1200달러(약159만원) 이하에 수출하지 말라고 관련 기관에 지시했다.

인도는 최근 들어 쌀 수출 통제 수위를 계속 끌어올렸다. 지난해 9월 동물 사료나 에탄올 제조 등에 쓰이는 부스러진 쌀알(싸라기)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지난달 20일에는 바스마티 쌀을 제외한 모든 백미에 대한 수출을 금지했다. 또 지난 25일에는 찐쌀에 대해 20% 관세 부과 조처를 내렸다.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쌀은 크게 네 종류인데, 그 중 가늘고 긴 형태의 인디카 백미가 전 세계 쌀 무역의 약 70%를 차지한다. 인도가 지난달부터 수출을 통제하는 품종이 바로 인디카 백미다. 바스마티 품종의 경우 향이 강해 주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인기가 있다.

인도 상무부에 따르면 이번에 바스마티 쌀에 대한 가격 제한까진 나선 건, 수출이 금지된 인디카 백미가 고급 바스마티 쌀로 둔갑해 불법 수출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바스마티 쌀 역시 모양이 길고 홀쭉해 인디카 백미와 혼합하면 분별이 어렵다.

향이 강한 바스마티 품종의 경우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 주로 소비된다. AP=연합뉴스

향이 강한 바스마티 품종의 경우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 주로 소비된다. AP=연합뉴스

인도 정부가 이처럼 일련의 쌀 수출 조처를 취하는 건 기후변화로 폭우와 가뭄 등 변덕이 심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쌀을 비롯해 각종 농산물 수확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도는 주요 식재료인 양파에도 40%의 수출 관세를 매기고 있다. 또 세계 설탕 생산 1위국인 인도는 오는 10월부터 자국 생산 설탕 수출을 7년만에 금지하기로 했다.

생산량 급감으로 물가는 계속 뛰고 있다. 인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인도의 식품 물가 상승률은 11.5%로 2020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래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인도국민당(BJP) 정부가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불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잇따른 식량 수출 옥죄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변국과 국제식량기구 소속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인도의 주요 외교 파트너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3개국은 지난 23일 인도에 쌀 수출 재개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보 다멘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담당관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의 흑해 곡물협정 중단에 이어 인도의 쌀 수출 제한까지 더해져 세계 식량안보가 변곡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피에르 올리비에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도의 쌀 제한 조치로 세계 곡물 가격이 최대 15%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쇼 굴라티 인도 국제경제관계연구위원회 연구원은 "인도가 주요 20개국(G20)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제3세계 국가들)'의 책임감 있는 리더로 등장하려면 이런 갑작스런 금지 조치는 피해야 한다"며 "인도가 믿을 만한 쌀 공급지가 아닌 것으로 비치는 것이야 말로 더 큰 손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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