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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 8월 수상작] 묵묵히 제자리 지킨 제주 돌담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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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장원

돌담
김동균

얼기설기 올라앉아 서로를 꼭 잡는다
마을은 어우러진 노른자 흰자처럼
묵묵히 속을 품을 때 숨을 쉬는 돌담길

달걀만 한 돌 하나 틈에서 떨어진다
바람에 등 떠밀려 낮은 곳에 뒹굴면
발끝에 차인 돌 하나 바닥은 이런 거라고

드나드는 바람과 수 천 년 걸어온 길
허물어지는 날들을 다시 또 쌓아가며
삼다도 끌어안을 때 지켜주는 구멍들

◆김동균

김동균

김동균

강원도 영월 출생.
안양대 음대 졸업(플루트 전공).
라온제나플루트 연구회 리더.
플루트·오카리나 연주자.
제주도 샤모니리조트 과장.

차상

풍경
유인상

컹컹 짖던 개도 없고 붉디붉은 봉숭아도 없고

흙돌담 무너지고 지붕 귀도 떨어졌네

우부룩
풀 자란 마당
바람이 들여다보네

차하

수라
고관희

챙그렁 칠성방울 마른 갯벌 울리고
작두 타는 할망 옷자락 너풀너풀
백중날 휘영청 살찐
보름달도 숨죽인다

아궁이 장작불에 정성껏 뜸을 들여
부잔교에 고이 올린 팥시루 뜨끈한 떡
고시레 한덩이 떼어
검은 펄에 건네니

해신도 감심했나 뭇 생명 간절함에
꿈틀대는 갯구멍 고개 내민 흰발농게
엽낭게 흙 토해내고
수라 깃털 파닥이네

혹여나 다시 올까 사라진 도요새
점점이 모여드는 상생의 저 춤사위
해맑은 뿔피리 소리
새울음을 부른다

이달의 심사평

장마와 태풍과 폭염의 8월이 그 막을 내리는 중이다. 참 힘들었다. 8월도, 8월을 견디어낸 우리 모두도. 이달의 응모작 수가 비교적 적은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응모자 대다수가 고향이나 어머니 등 보편적 감수성을 보였는데 이는 조금 안타깝다. 시대와 사람을 읽고 이를 고민하는 작품들을 써는 것이 어떨까.

이달의 장원은 김동균의 ‘돌담’이다. 바람 많이 불어도 끄떡없는 제주도 돌담의 특성을 형상화하였다. 특히 둘째 수가 시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었는데 셋째 수와 자리를 바꾸면 전체 밀도가 더 높아질 뻔했다. 구와 구의 조응도 자연스러워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이는 많은 습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이다.

차상은 유인상의 ‘풍경’이다. 스산한 시골 폐가의 풍경을 감정의 개입 없이 시각화한 단시조이다. “우부룩 풀 자란 마당”을 “바람이 들여다”본다는 종장이 다소 일반적이고 밋밋할 수 있는 전체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다. 종장에 힘이 있어야만 하는 단시조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정적이고 하강의 이미지 속에 “우부룩”이라는 상승의 낱말이 놓이니 쓸쓸함이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차하는 고관희의 ‘수라’로 선했다. 수라는 새만금의 마지막 습지인 수라 갯벌을 말한다. 달빛 아래 토속성 짙은 굿판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시는, 원색적이고 신명스런 기운과 이어지게 하여 갯벌의 생명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마른 갯벌 울리고” “옷자락 너풀너풀” “흙 토해내고” 같은 역동적인 시어들이 갯벌의 질펀한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잘 살려냈다.

노경호·배순금의 작품들도 눈여겨 보았다.

심사위원 강현덕(대표집필)·서숙희

초대시조

배접
임성규

나, 그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비밀한 울음을 속지로 깔아놓고
얇지만 속살을 가릴
화선지를 덮었다.
울음을 참으면서 나는 풀을 발랐다
삼킨 눈물이 푸르스름 번지면서
그대의 환한 미소가
방울방울 떠올랐다.

◆임성규

임성규

임성규

1968년 전남 해남 출생.
1999년 ‘금호문화’ 시조, 2018년
‘무등일보’ 동화·아동문학평론 동시 당선.
2014년 무등시조작품상 수상.
시조집 『배접』 『나무를 쓰다』.
동화집 『형은 고슴도치』 등.

서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종이나 헝겊을 여러 겹 포개어 풀로 붙이는 일을 배접이라고 한다. 시인은 배접의 속성을 시에 차용했다. 두 수로 이루어진 짧은 시에 맑고 애잔한 슬픔이 잘 드러나 있다.

“나, 그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라고 시인은 결연하게 말하며 한 음보로 처리한 “나”에서 들키고 싶지 않은 주체인 ‘마음’을 강조했다. 시의 배면에는 봄날의 안개처럼 엷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비밀한 울음을 속지로 깔아놓고” “얇지만 속살을 가릴/ 화선지를 덮었다”라고 했다. 울음을 참으며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시인이 보인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9행의 정형시로 압축했지만 글썽이는 마음이 행간에 투명하다. 여백이 넓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가만히 음독해보면 시는 살아 숨을 쉬며 기척한다. 독자의 마음을 툭 건드리며 당신도 울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으냐 묻는다.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물기를 얹어주는 가편이다. 좋은 시는 우리 삶에 쉼표 같은 혹은 산소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시로 읽히기도 하겠지만 조금만 주의해서 읽어보면 내재율이 살아있는 시조라는 걸 알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읽히며 쉽게 스며든다. 하늘 복판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조각달처럼 마음을 스윽 베는, ‘배접’은 깔끔하면서 여운이 오래 남는 시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혜숙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중앙 시조의 e메일(j.sijo@joongang.co.kr)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 할 수 있습니다. 등단하지 않은 분이어야 하며 3편 이상, 5편 이하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02-751-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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