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 일본 화장품까지 불매운동…오염수발 외교전쟁 조짐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54호 05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태평양 연안국·언론 반응

25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 앞에서 한 시민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중단하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5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 앞에서 한 시민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중단하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이 지난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의 해상 방류를 시작한 것과 관련해 태평양 연안국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해당 국가들의 주요 언론과 정부 대응 등을 살펴본 결과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용어 사용에서부터 다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25일 방류에 대한 태평양 연안국들의 반응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일본 정부의 방류 방침에 대해 지지나 양해 입장을 밝힌 미국·호주·필리핀 등은 ‘○’로, 정부 차원에서 항의하며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를 확대한 중국·홍콩과 반대 입장을 밝힌 북한은 ‘×’로 각각 나눴다. 또 기준을 지키는지 여부 등을 면밀히 지켜보겠다고 한 한국과 내부 이견이 있다고 밝힌 태평양 섬나라들은 그 중간인 ‘△’로 표시했다.

흥미로운 건 각국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류한 오염수에 대한 표현에서도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처리수(treated water)’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원자로 냉각 등에 사용돼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오염수(contaminated water)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이용해 방사성 물질을 일차 제거한 뒤 그 처리수를 일반 바닷물에 희석해 방류하는 것이란 사실을 부각하기 위한 용어 선택으로 추정된다.

관련기사

일본 언론은 이 용어를 그대로 쓰지 않고 적절하게 가공했다. 교도통신 영어판의 경우 기사 본문에는 ‘처리한 방사성 물(treated radioactive water)’로, 제목에는 ‘후쿠시마 물(Fukushima water)’로 각각 표기했다. 이에 비해 진보 성향인 아사히 신문과 보수 성향인 요미우리 신문은 모두 ‘처리수’라는 용어를 썼고 공영방송인 NHK는 ‘처리한 물’이란 용어를 함께 사용했다.

25일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시위대가 오염수 방류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5일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시위대가 오염수 방류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 세계 통신사와 주요 언론들도 용어 선택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AP통신은 기술적 처리 과정을 담아 ‘처리하고 희석한 방사성 폐수(treated and diluted radioactive wastewater)’로 표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 같은 기술적 표현을 담지 않고 간단히 ‘후쿠시마 물(Fukushima water)’로 표기한 게 눈에 띄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CNN 방송은 ‘처리한 방사성 폐수(treated radioactive wastewater)’라는 표현을 사용해 ‘처리’와 ‘방사선’ 모두에 방점을 찍었다. 영국 BBC 방송도 비슷하게 ‘처리한 방사성 물(treated radioactive water)’로 적었다.

어민들이 일본 동쪽까지 가서 조업하는 대만도 비슷했다. 대만 영어 매체인 포커스 타이완은 기사 본문엔 ‘처리한 방사성 물(treated radioactive water)’로 쓰고 제목엔 ‘핵 폐수(nuclear wastewater)’로 표현했다. 반면 대만의 최대 중국어 매체인 연합보 인터넷판은 ‘핵오수’라는 표현을 사용해 대조를 이뤘다.

용어 사용과는 별개로 태평양 연안국 언론들은 대부분 이번 방류 조치와 관련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호주와 뉴질랜드 언론에서는 방류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다만 쿡제도의 주요 매체인 쿡아일랜드뉴스는 25일 주요 기사로 ‘쿡 제도의 마크 브라운 총리는 후쿠시마 방류를 지지한다’는 기사를 올렸다. 쿡제도는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지난 7월 일본과 한국에 이어 방문한 나라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나라는 단연 중국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2일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데 이어 방류가 시작된 지난 24일에는 일본이 원산지인 모든 수산물의 수입 통관을 일시 중단했다. 홍콩도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5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중단했던 걸 10개 현으로 확대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사태가 중국과 일본 간 외교 전쟁으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도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전면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자 “예상외의 강경 대응”이라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중국의 금수 조치가 농산물 등으로 확대될 경우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날 중국 SNS에선 일본 화장품에 대해서도 불매운동에 나서자는 글이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 농림수산성의 한 간부는 “(중국이) 대응할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어민들도 “주변국을 설득하겠다던 정부는 지금까지 대체 뭘 한 거냐”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카모토 마사노부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장은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에게 전화를 걸어 “전국의 어민들이 매우 놀란 상태”라며 중국에 금수 조치 철회를 요청하라고 촉구했다.

일본 어업이 입을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농림수산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액은 871억엔(약 7900억원)으로 지난해 일본의 전체 수산물 수출액(3873억엔)의 22.5%에 달했다. 일본 수산물 금지 대상 지역을 확대한 홍콩도 전체의 19.5%(755억엔)를 차지했다. 일본 전체 수산물 수출의 42%가 중국과 홍콩으로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도쿄=이영희 특파원 tzschaeit@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