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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가 대세? 올드 머니 피플은 여전히 와인 즐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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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20면

‘파인 와인’ 전문가 마튜 마르샬

셀라프리베 와인 셀러에서 달콤한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샤토 디켐’ 2011년 빈티지 와인 15L 병을 안고 있는 마튜 마르샬 대표. 김상선 기자

셀라프리베 와인 셀러에서 달콤한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샤토 디켐’ 2011년 빈티지 와인 15L 병을 안고 있는 마튜 마르샬 대표. 김상선 기자

맥주·와인 수입양은 줄고 싱글몰트 위스키 수입양은 증가세다. MZ세대는 전통주와 ‘하이볼’에 푹 빠졌단다. 코로나19 이전까지도 왕성했던 와인 시장은 이대로 주저앉는 걸까.

“와인 수입양이 준 것은 맞지만, 객 단가는 올랐어요. 와인을 찾는 선호도가 ‘양보다 질’로 바뀌었다는 얘기죠.” 와인수입업체 ‘셀라프리베’ 마튜 마르샬 대표의 말이다. “지난해 말 관세청 수출입 통계를 보면 1~9월까지 와인 수입액은 4억3668만 달러로 전년동기대비 약 6.6% 늘어난 반면, 와인 수입량은 약 5만2855t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약 7.7% 감소했다고 해요. 수입량은 줄었지만 수입액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단가가 높은 와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는 얘기죠.”

특히 오래 전부터 와인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즐겨왔던 ‘올드 머니’ 피플에게 가격은 그닥 중요치 않은 요소인 듯하다. “주변에 와인 좀 안다 하는 사람이 늘수록 ‘올드 머니’ 피플은 남들은 모르는 특별한 와인을 마시면서 차별성을 느끼고 싶어 하죠. MZ세대 ‘영 앤 리치’가 싱글 몰트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소비량이 늘고 있다지만, 식사와 함께 담소를 즐기며 다양한 페어링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주류는 와인뿐이에요. 회장님과 CEO들은 여전히 그 우아한 클래식을 사랑하죠.”

병당 1000만~7000만원에 거래도

마르샬 대표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는 그가 ‘파인 와인(fine wine)’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와인’이나 ‘럭셔리 와인’과는 달리 ‘좋은 와인’으로 풀이되는 파인 와인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유럽이나 미국 와인 업계에선 이미 널리 쓰이는 용어다. “단순히 비싼 와인이라기보다, 희소가치를 지닌 와인 또는 유명 와인 메이커가 만든 정교한 와인이라는 뜻으로 통용되죠. 미술품을 말할 때의 ‘파인 아트’,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말할 때의 ‘파인다이닝’과 같은 의미에요.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은 들어봤을 ‘샤토 마고’ ‘샤토 무통 로칠드’처럼 누구나 최고의 와인이라고 인정하는 와인들이 ‘방 팡(Vin Fin·프랑스어로 파인 와인)’이죠.”

마르샬 대표가 3년 전 한국에서 론칭한 셀라프리베는 프랑스 부르고뉴·보르도·쥐라 지역 와인을 주로 유통하는 와인 수입업체인 동시에 소싱 업체로 유명하다. 와인 소싱 업체란, 일종의 ‘퍼스널 소믈리에’로 기업 또는 개인이 원하는 와인을 찾아주는 전문회사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마르샬 대표는 ‘부르고뉴의 전설’이라 불리는 와인 메이커 앙리 자이에의 ‘도멘 앙리 자이에 에세조’ 와인을 매입해 국내 와인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앙리 자이에는 2006년 타계했다. 당연히 그가 만든 새로운 와인은 있을 수 없다. 생전에 만든 와인도 점점 수가 줄어서 구하기 어려워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얼마 전 스위스 제네바의 한 옥션에서 880병이 출품돼 여러 명에게 낙찰된 바 있는데, 이때 낙찰 총액이 520억원에 달했다. 낙찰가의 평균가격은 1병당 약 590만원. 하지만 출품된 와인이 모두 낙찰된 것도 아니어서, 시장에서 실제 거래되는 소비자 가격은 병당 1000만~7000만원 선이라고 한다.

“희귀한 와인인 만큼 가짜도 정말 많은 와인이죠. 저도 앙리 자이에를 딱 네 번 마셔봤는데 그 중 한 번은 가짜였어요. 유명한 옥션에서 거래된 와인이었는데도 말이죠.”

와인 업계에선 소싱 전문가를 ‘보물을 찾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개인 컬렉터들 사이에 조용히 숨은 보물을 찾아내고, 진품 감별까지 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인을 실제로 마셔 보지 않고 어떻게 진품을 판별할까.

“미술품이나 문화재 감정을 할 때처럼 해당 와인과 와이너리의 역사와 개성을 세세히 다 꿰뚫고 있어야죠. 예를 들어 부르고뉴 파인 와인들 중에는 레이블에 일련번호가 찍혀 있거나 빈티지마다 특별한 마크를 찍어놓은 것들이 있어요. 올드 빈티지 와인들에는 오랫동안 셀러에 보관되면서 종이에 밴 특유의 냄새가 있죠. 코르크 냄새로 와인 컨디션을 체크할 수 있고, 레이블 종이 색깔이나 질감으로도 구분할 수 있죠.”

“이것까지 있네” 말 듣고 싶어 와인 수집

셀라프리베가 유통하는 대표 와인들. (왼쪽부터) 샤토 라투르 2011년, 크루그(샴페인) 2008년, 샤토 디켐 2000년, 바타드 몽라셰 도멘 라모네 2018년, 에스 드 살롱(샴페인) 2012년, 도멘 르로아 로마네 생 비방 2006년. 모두 1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파인 와인들이다. 김상선 기자

셀라프리베가 유통하는 대표 와인들. (왼쪽부터) 샤토 라투르 2011년, 크루그(샴페인) 2008년, 샤토 디켐 2000년, 바타드 몽라셰 도멘 라모네 2018년, 에스 드 살롱(샴페인) 2012년, 도멘 르로아 로마네 생 비방 2006년. 모두 1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파인 와인들이다. 김상선 기자

그런 점에서 마르샬 대표에게는 신뢰감을 갖게 하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부르고뉴 옆 쥐라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주방에서 요리하기를 좋아했다. 셰프가 되고 싶어 요리학교로 진학했고, 졸업 무렵 체험 학습으로 근무했던 레스토랑에서 인생 멘토를 만났다. 그가 이끄는 대로 수많은 부르고뉴 와이너리들을 방문하면서 와인과 사랑에 빠졌다. 영국인 마스터 소믈리에 에두아르 오제에게 특별 트레이닝을 받고, 함께 두바이 포시즌 호텔 론칭 멤버로 호텔 전체 와인 리스트 작성과 구매를 담당했다. 이후 홍콩 최대 와인 컬렉터의 제안으로 그의 개인 컬렉팅을 도우면서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들의 와인 책임자로 근무했다. 이때 파인 와인 전문가로서 이력을 공고히 했다. “당시 제가 담당한 레스토랑들이 미쉐린 스타를 받았을 때 정말 뿌듯했죠.”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되는 조건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는 얼마나 좋은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있는가도 포함된다. 마르샬 대표의 고객 리스트에 여러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파인 와인을 찾는 고객들은 누굴까. 마르샬 대표는 “와인 재테크 또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경우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와인 재테크란, 비전 있는 와인을 사두었다가 적당한 때 재판매해 차익을 얻는 투자방법이다.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홍콩·싱가포르 등에는 일반 와인 투자자들을 위해 와인 선정 및 구매, 보관, 전매, 와인 배송까지 모든 절차를 돕는 와인 투자 전문 기업들이 여럿 있다. 셀라프리베 역시 가능성 있는 와인 리스트를 제안하고, 경매에 대신 참여해 와인을 구매하고, 국내 또는 프랑스 브루고뉴에 있는 와인 셀러에 보관도 해준다.

“국내외에서 와인 투자에 관심이 커지는 이유는 금보다 안정적인 투자이기 때문이죠. 와인 시세를 결정하는 국제와인거래소 리벡스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금은 가치 등락은 심했던 반면, 와인은 느리지만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어요. 기후위기로 포도 재배가 점점 더 힘들어진 요즘 와인 생산량 자체도 적어졌죠. 파인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물량이 줄어드니까 가치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최근 만난 분은 2년 전 15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현재 가치가 3200만 달러까지, 두 배 이상 올랐다고 해요.”

‘특별한 목적’은 개인 셀러의 와인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갖추고 싶거나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와인 매니아로 소문난 ‘올드 머니’ 피플의 경우 대게 집에 와인 냉장고가 아닌, 와인 셀러를 갖추고 있다. 적게는 수백 병, 많게는 수천 병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 와인 좀 안 다하는 손님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어, 이게 있네” “이것까지 있네”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구체적으로 ‘이 와인을 좋아하는데 이 해의 빈티지 와인을 구할 수 있나’ 요청하는 분들도 있어요. 어떤 회장님은 손녀가 태어난 해의 빈티지 와인을 찾으셨어요. 해당 와인을 12병 또는 24병 정도 구매해서 셀러에 보관했다가 손녀가 결혼하는 날 파티에서 하객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고. 오래 두었다가 후손들에게 자산으로 물려주겠다는 분들도 있죠.”

2000년대 말 와인 트렌드를 견인했던 만화 『신의 물방울』에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주인공 눈앞에 장미정원이 펼쳐지는 등의 황당한 장면이 많았다. 독자후기도 “만화스러운 표현”과 “억지스러운 표현”으로 갈렸다.

“만화 『신의 물방울』 속 주인공 같은 경험이 가능하냐고요? 아내가 그러는데 제가 정말 좋은 와인을 마셨을 때, 얼굴과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인대요. 완벽한 세계를 만나고 있는 표정이죠.(웃음) 모든 냄새·향기는 기억과 연관이 커요. 저마다 머릿속에 냄새의 성을 만들고 방마다 여러 기억과 함께 향을 저장하죠. 어떤 순간 어느 서랍이 열릴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파인 와인은 ‘기억 속 저편의 완벽한 시간을 경험케 하는 와인’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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