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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이슈만 남아 뒹구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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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짧은 지난여름만 되돌아보더라도 수많은 사고와 재난이 있었다. 불가항력의 자연재난도 있었으나 우리의 시스템이 자초한 사회재난과 인재(人災)도 많았다. 문제는 그러한 사고와 재난을 함께 해결하고 안전한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신뢰의 공동체 의식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고는 언제나 어김없이 정치 이슈화되었다. 위기 앞에서는 진영을 넘어 협력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과 문제 해결을 위한 대처를 함께 하는 인간 본연의 성정조차 희미해진 듯 보였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을 둘러싼 정쟁화된 이슈는 세상을 극단으로 나눴고 둘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커졌다.

들불처럼 일어났던 뜨거운 이슈
해결책 없이 또다른 이슈에 묻혀
정보의 홍수 속 진실규명은 표류
우리사회는 과연 전진할 수 있나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고 했던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이슈에 묻혀 불과 얼마 전까지도 뜨겁게 다뤄지던 그 직전의 이슈는 어느새 흐지부지 사라졌다. 들불같이 일어나 많은 이들이 논쟁하고 분노했었건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잊혀 버리는 반복이었다. 새롭다(New)는 말의 복수형이 뉴스(News)이기에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오래된 소식들은 자동으로 지워져 버리는 것인가.

불과 지난주까지 격렬한 논쟁이었던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에 대해서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분석하고 누군가가 분명한 책임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체계를 정비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없이 그저 정치적 책임의 논쟁만 일다가 그마저도 정리되지 않은 채 잊히고 있다. 급한 불은 대한민국 특유의 방식으로 껐다 하더라도 K팝 콘서트의 포장으로 덮여선 안 될 일이다. 분명하게 밝혀 무겁게 책임질 때만 미래가 있다.

새만금 이슈로 덮이기 직전의 분당 흉기 난동 사건은 어떤가. 긴급하게 대응해야 할 정신건강과 안전에 대한 고민 없이, 더 깊게는 희망 없는 혼돈사회 속 분노에 대한 근본적 대응 없이, 그리고 정신질환의 문제가 연결돼 있다면 어떻게 정신건강 제도를 발전시킬지에 대한 깊은 논의 없이, 정신질환과 범죄 위험을 연결하고 사회와 격리하는 방안만 서둘러 등장했다.

반복돼 덮이는 이슈는 끝이 없다. 그 직전에 등장했던 철근 빠진 아파트 문제. 안전과 직결된 심각한 문제이건만 과연 해결되어서 잠잠해진 것인가. 안전에 대한 무관심과 책임 회피의 또 다른 예로만 남았다. 그리고 그 직전에 있었던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안타까운 사망. 과연 우리는 무너진 교육을 반성하며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직전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4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재난. 점점 더 심해질 기후변화 속 재난 예방을 위한 대응에 대해 우리 사회는 각성하게 되었을까.

불과 한 달 남짓 동안 일어난 엄청난 일들은 모두 정쟁 이슈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상황을 왜곡해 이용하는 ‘스핀 닥터’(spin doctor·선전 및 홍보 전문가)나 음모론자의 기획도 있겠지만,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보의 급류 속에서 진실은 흔적 없이 떠내려갔다. 헛소문이나 가짜 뉴스, 가십은 인간 세상에 항상 있었지만,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파급력이 강하며 돌이킬 수 없다는 게 오늘날의 문제다. 그리고 진영논리가 확대재생산 하는 정쟁의 이슈들은 소위 우리 편을 신격화하고 소위 반대편을 악마화하는 극단으로 세상을 나누어 간다.

그렇기에 지금은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동시에 하며 입체적인 진실을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최고 지적 능력의 기준은 동시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능력”이라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처럼.

물론 각자의 관점을 지니고 때론 편견을 가지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개성이다. 그러나 공정해야 하는 순간에는 사견과 사심을 조절하고 몇 걸음 떨어져 제삼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신격화와 악마화의 이분법적 시대에는 대상의 이름을 가리고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이 지지하는 이의 이름 대신 반대하는 이의 이름을, 또 반대로 자신이 반대하는 이의 이름 대신 지지하는 이의 이름을 넣어 편견에 눈을 감고 행동과 정책을 판단해야 건강한 논쟁이 가능하다.

사회제도가 원래 하기로 되어있는 일과 실제로 하는 일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져서 간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지적처럼,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 데는 이슈만 키우고 정치적으로 활용한 이들의 책임이 크다.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절체절명의 사안들이 정쟁의 이슈로 소비된 채 나뒹굴고 있다. 세상의 이슈에 한 마디씩 던지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훈수꾼보다, 실제로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행동하고 변화시키는 책임 있는 이들이 필요한 시대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