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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직격 인터뷰

"LH 개혁 손 놓은 원희룡 미스테리…대통령 직접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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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헌동 SH 사장은 지난 23일 "분양원가와 자산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전관 특혜가 사라진다"며 "윤석열 정부 취임 후에도 국토부와 LH가 왜 정보 공개를 꺼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김헌동 SH 사장은 지난 23일 "분양원가와 자산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전관 특혜가 사라진다"며 "윤석열 정부 취임 후에도 국토부와 LH가 왜 정보 공개를 꺼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다시 문제다.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LH는 지난 2021년 임직원의 개발예정지 땅 투기 의혹이 불거져 전 국민적 공분을 산 후 해체 수준의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혁신은커녕 이른바 '순살 아파트'로 상징되는 철근 빠진 부실시공, 그리고 설계·시공·감리 전 분야를 망라한 전관 특혜와 이권 카르텔 병폐만 더해졌을 뿐이다.

2021년과 2023년. 그새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심지어 반(反) 카르텔 정부를 내세워 하루가 멀다고 각 분야 카르텔 혁파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왜 LH는 달라지지 않을까. 해법은 뭘까.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을 만난 건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전관특혜 쌓여 부실 시공 만연
폐해 드러나도 개혁 의지 없어
공공성 결여된 공기업의 비극
원가 자산 공개가 카르텔 해법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장 시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맹공했던 그는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인 지난 2021년 11월 시민운동가에서 공기업 사장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취임 한 달 만에 서울 고덕강일 4단지 분양원가 공개를 시작으로 공기업 최초의 보유 자산 공개, 후분양제,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 도입, 원청의 직접시공제 등 10여 개 혁신안을 연달아 내놓았다. 그는 "SH는 하는데 LH는 하지 않는 것,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LH가 발주한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를 보니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윤 대통령이 지적했듯이 이권 카르텔 구조 탓이다. 국토부와 건설사도 문제지만 특히 일련의 대형 사건·사고에도 아무 책임을 안 지는 LH 전·현직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2021년 광명 시흥지구 투기 의혹 이후 결국 단 1명도 처벌받지 않았다(2명 구속됐으나 결국 무죄 판결). 이번에도 몇달만 지나면 다 잊힐 거라 생각할 거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이 지난 7월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과했다. 이 사장은 조직 혁신을 위해 전체 임원 사직서를 받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2년 전 투기 논란 때와 똑같이 임기가 이미 끝났거나 곧 끝나는 사람의 사표를 받는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을 깨부수어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했음에도 철근 누락 아파트 명단이 공개된 이후 보름 동안 새로 체결한 648억원 규모 11건의 용역 계약 역시 부실시공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전관 업체가 차지했다. 계약 취소로 끝날 일이 아니라 수사가 필요하다. "

※지난 4월 인천 검단 사고를 계기로 국토부가 무량판이 본격 도입된 2017년 이후 5년 동안 무량판 공법으로 지어진 LH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 조사했더니 15개 단지(이후 6개가 늘어 총 21개)의 설계·시공 단계에서 철근 빼먹기가 드러났다. 전관 업체가 독식한 감리는 무용지물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LH 3급 이상 퇴직자 절반이 LH 계약 업체에 재취업했다. 이 기간 전관 업체에 몰아준 일감이 9조원이 넘는다. 또 21개 철근 누락 단지에선 25개 전관 업체가 지난 3년간 3232억원의 수의계약을 땄다. '엘피아(LH+마피아)'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고개숙인 원희룡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이한준 LH 사장이 30일 오후 LH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 앞서 시흥 은계지구 수돗물 이물질 발생 사태 등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2023.7.30   pdj663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고개숙인 원희룡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이한준 LH 사장이 30일 오후 LH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 앞서 시흥 은계지구 수돗물 이물질 발생 사태 등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2023.7.30 pdj663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공공 주택 공급이라는 역할이 같은데 SH와 달리 왜 LH에서만 유독 전관 문제가 불거지나.
"두 조직의 경험이 다르다. SH는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인 2004년에 이미 상암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면서 혁신 마인드가 조직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2006년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면서 완전히 다른 길을 갔다. 당시 여당인 노무현 정부의 '후분양제 로드맵'은 '2007년 건축공정률 20%'였는데, 야당이었던 오 시장은 2006년 SH에 공정률 80% 후분양제를 도입했다. 다음 해엔 원가까지 공개해 부당이익을 숨길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 후분양으로 부실공사 책임을 SH가 직접 지게 했으니 철근 빼먹기 같은 일을 벌일 수 없다. 정보 공개로 감시의 눈이 많아지면 전관 특혜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
-고(故) 박원순 시장 재임 9년 동안 SH도 후퇴했는데. 
"맞다. 오 시장은 2010년 원가가 3.3㎡(평)당 580만원인 강서구 발산 30평 아파트를 평당 790만원에 분양했다. 당시 강남 아파트 분양가의 3분의 1 수준 가격이다. 그런데 박 시장은 2015년 인근 마곡 지구 아파트를 원가 공개 없이 평당 1570만원에 분양했다. 발산과 비슷한 시기에 사들인 땅이라는 걸 고려할 때, 박 시장 시절 SH가 서울시민을 상대로 얼마나 폭리를 취하면서 집값을 올려놨는지 알 수 있다. LH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경실련에 있을 때 두 기관에 원가 정보 공개를 요구했지만 거절했다. 특히 SH는 소송을 2년이나 끌면서 분실을 이유로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
 지난해 1월 한 시민이 서울 서울주택도시공사(SH) 로비에서 SH가 공개한 아파트 분양원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박원순 전임 시장 시절엔 적법한 정보 공개 요구에도 끝내 원가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뉴스1]

지난해 1월 한 시민이 서울 서울주택도시공사(SH) 로비에서 SH가 공개한 아파트 분양원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박원순 전임 시장 시절엔 적법한 정보 공개 요구에도 끝내 원가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뉴스1]

-취임하자마자 원가 공개가 가능했던 이유는. 
"SH가 거짓말한 거였다. 원가분석 자료가 고스란히 다 있어 지금까지 8차에 걸쳐 공개했다. SH의 주인은 서울시민이다. 주인에게 원가와 자산을 공개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비정상이다. 정상으로 회복 중이다. "
-원가·자산 등 정보공개와 후분양제 등이 카르텔 해체의 해법인가. 
"그렇다. 설계도면과 시공 과정 동영상까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LH는 그동안 땅장사와 바가지 분양으로 너무 쉽게 너무 큰 돈을 벌었다. 정보를 독점하고 국민에게 거짓말하면서 조직 차원은 물론 전·현직 임직원 개개인이 주거니 받거니 이익을 향유해왔다. 전직은 설계·감리 수의계약으로, 현직은 신도시 땅 투기로 돈을 벌었다. 원가를 공개하면 바가지 분양이 드러나 비난이 쏟아질 걸 알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고 버티는 거다. 땅값은 서울이 비싼데 경기도 등의 LH 아파트 분양가가 더 비싼 게 말이 되나. 공기업이 국민을 위하는 대신 장사꾼 마인드로 자기 장사만 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LH는 연 2조~5조원의 과도한 이익을 얻었다. SH는 연 1500억~2000억 원대다. 또 검단 아파트 붕괴와 '순살 아파트' 문제는 한국 건설업계의 선분양 관행 탓이 크다.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먼저 팔아 돈을 확보하니 LH와 건설사들은 날림공사하고 자재 빼먹는 돈 떼먹는 기술만 연구한다. 후분양이었다면 절대 부실시공 못 한다. 최소한 분양받은 입주자 피해는 없다. "
-임대아파트 적자 탓에 신규 택지 판매로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데.  
"거짓말이다. 지난 1990년 2100만원(건축비용 1000만원에 땅 1100만원)에 지은 대치 1단지 20평 임대아파트가 지금 12억원이다. 건축비용을 상각하고 수리·유지·보수 비용을 다 합해도 늘어난 자산이 훨씬 많다. LH는 이런 자산 현황을 감추고 맨날 적자 타령이다. 자산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이런 거짓말 못 한다. "
김헌동 SH 사장이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위례 단지에서 분양원가를 직접 공개했다. 연합뉴스

김헌동 SH 사장이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위례 단지에서 분양원가를 직접 공개했다. 연합뉴스

-LH가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출발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대선 때 분양원가 공개를 약속했던 노 대통령은 취임 후인 2004년 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며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국민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설립한 공기업(1962년 설립한 주택공사가 토지공사와 통합해 2009년 LH 출범)을 대통령이 장사하는 기업으로 규정하면서 대국민 바가지 씌우기가 시작됐다. 공기업이 독점하는 토지 수용권을 이용해 싸게 확보한 택지를 공익적 목적으로 쓰지 않고 비싸게 팔아 땅장사하고, 또 민간과 같은 비싼 가격에 아파트를 팔았다. 민간과 똑같이 바가지 분양했다. 이럴 거면 공기업이 왜 필요한가. 전부 민간에 맡기고 개발이익만 환수하는 게 더 낫지. 공기업이 돈만 밝히니 부패하고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거다. "
-정권이 바뀌었는데 LH는 왜 원가·자산 공개를 안 하나. 
"나도 원희룡 장관에게 묻고 싶다. 새 정부 새 장관이 왔으면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1년 반 가까이 손을 놓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 시절인 2006년 원가 공개 법안을 발의했던 원 장관이 취임 후엔 LH는 사업구조가 다르다고 딴소리한다. 다르지 않다. 국토부 관료에 휘둘린 것인지, 아니면 원 장관 본인이 너무 정치적이라 눈치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 원 장관이 끝내 안 하면 윤 대통령이 직접 '공개하라'고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

◆김헌동 SH 사장=쌍용건설에 20여년간 재직하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건설 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2004~2014년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을 거쳐, 2019년부터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장을 맡았다. 지난 2021년 11월 SH 사장에 취임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