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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치안 위한 의무경찰 재도입, 신중하게 접근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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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무경찰 재도입 검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무경찰 재도입 검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범죄 예방 강화 내세워 의경 부활 검토

병역 자원 부족 우려…사회적 공론화 거쳐야

정부가 의무경찰(의경)의 부활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덕수 총리는 어제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 대책을 발표하며 “범죄 예방 역량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의무경찰제 재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경 부활로 군 복무 자원이 더욱 부족해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 한 총리는 “의무경찰은 기존 병력 자원의 범위 내에서 인력 배분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의경 인력 규모로 7500~8000명을 제시했다.

최근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며 총체적 치안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경찰의 범죄 예방 역량을 강화하는 건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이미 폐지한 제도인 의무경찰을 재도입하는 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청년 인구 감소로 병역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청년 세대가 민감하게 보는 병역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2년 전두환 정부에서 창설한 의경은 41년 만인 올해 4월 마지막 기수가 전역하면서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군 복무를 대신해 경찰 업무를 보조하는 의경을 없애면서 그 자리를 직업 경찰로 대체하자는 취지였다.

정부가 처음으로 의경 폐지를 결정한 건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방개혁 2020’의 일환으로 전투·의무경찰의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인원을 감축해 2012년에는 완전히 없앤다는 구상을 담았다. 인건비가 싸다는 이유로 군 복무 대상자를 의경으로 모집해 치안에 활용하는 건 문제라는 인식이 깔렸었다. 국방의 의무로 소집한 청년에게 군 복무 외에 다른 일을 시키는 건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지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논란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열악한 근무환경과 인권 침해를 이유로 전·의경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전경은 2013년 폐지됐지만 의경은 그대로 남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는 국방부가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의경을 폐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의경 폐지를 실천에 옮기면서 의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와서 정부가 의경을 다시 도입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행여라도 의경 부활이 저렴한 인력을 손쉽게 모집해 운영하려는 경찰 조직의 편의주의로 흘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간부는 넘치는데 현장 치안 인력은 부족한 경찰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 경찰 인력을 현장 치안 중심으로 다시 배치하고, 간부들도 현장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변화가 시급하다. 모든 국민은 범죄의 불안에 떨지 않고 질 좋은 치안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 경찰은 이런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해소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