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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인류애의 원칙이 무너지지 않도록” 어린이의 외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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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남상은 실장·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남상은 실장·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20년 전인 2003년 8월, 요르단에 상주하며 이라크 아동과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던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유엔사무소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인도주의 활동가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 하지만 이렇듯 우리를 절망시키고 위협했던 사건 이후에도 인도주의 활동은 중단 없이 지속됐다.

‘인류애’를 향한 각 사람의 열망, ‘인간의 존엄과 권리는 반드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이 중대한 원칙’이 실현되길 바라는 많은 이의 열심 덕분이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6월, 월드비전과 이재정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한 ‘해외 긴급구호에 관한 법률 개정 토론회’에서 국적도 나이도 인종도 다른 두 아동이 한목소리가 되어 우리나라 국회와 정부에 인도적 지원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행법은 현재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복합적이고 만성적인 위기를 지원할 법적 근거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이로서 우리는 이런 세상을 꿈꿉니다. 모두가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은 세상. 어린이가 두려움 없이 성장하는 세상. 모두의 존엄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 인류애라는 원칙이 무너지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바로 여러분께 달려 있습니다. 마르와와 민지의 미래는 하나입니다.” 레바논에 사는 시리아 난민 아동 마르와의 목소리에 서울에 사는 김민지 아동의 목소리가 겹쳐 국회에 울렸다.

오늘날 우리는 코로나19, 전쟁, 기근, 지진, 이상 기후 등 복합적인 위기로 인도적 지원이 절실한 이들이 3억6000만 명에 달하는 위태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담하다. 2024년 유엔이 발표한 인도적 지원 필요 자금 중 4분의 1만이 채워졌다. 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는 민지양과 같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더 많은 이가 세상에 ‘인류애’의 가치를 전하고, 이를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 해결을 하나 된 목소리로 외칠 때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 월드비전이 김혜자 친선대사와 함께 인도적 지원의 법적 기반 강화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캠페인 ‘아웃크라이’를 진행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20년 전 인도주의를 위협했던 이라크 폭탄테러 발생일은 ‘세계 인도주의의 날’로 제정되어 인류애의 가치를 되새기는 날이 되었다. 모두의 생명과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이 오도록, 8월이 지나기 전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남상은 실장·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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