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열 내린다는데 가지 다 싹둑…한여름 '닭발 가로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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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한 도로 옆. 시민 여러 명이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모자를 쓰거나 양산을 들고 걷고 있었다. 이날 체감 온도는 31도로, 폭염주의보 수준(33도)에 근접했다. 50대 이모씨는 “자주 다니는 길인데 햇볕이 센 곳이어서 (모자를)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 가로수에는 나뭇잎이 많지 않았다. 가지치기를 지나치게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로수에 잎이라도 풍성하면 더위를 덜 느낄 텐데 아쉽다”며 “앙상한 가로수를 보니 더 더운 느낌이 든다”고 했다.

 21일(왼쪽)과 지난 4일(오른쪽)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한 인도에 설치돼 있는 가로수의 모습. 가로수 모습에 비춰 과도한 가지치기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환경단체 측 지적이 제기된 곳이다. 나운채 기자

21일(왼쪽)과 지난 4일(오른쪽)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한 인도에 설치돼 있는 가로수의 모습. 가로수 모습에 비춰 과도한 가지치기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환경단체 측 지적이 제기된 곳이다. 나운채 기자

가로수 가지치기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폭염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는데 정작 가로수는 그늘을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가로수를 관리하는 자치단체는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가로수, 인공 그늘막보다 열 저감 효과↑

가지치기 작업은 관할 자치단체가 주로 봄이나 가을철에 한다. 줄기만 남기고, 가지는 대부분 잘라내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가로수가 흉물스럽게 보일 정도로 앙상해진다고 한다. 이를 두고 ‘닭발 가로수’라고 부른다. 앙상하게 가지를 자르는 게 되풀이되면 나무 수명이 단축될 수도 있다고 환경단체는 설명한다.

2021년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전국에서 해마다 가로수 1만6000여그루가 고사(枯死)하는 원인은 과도한 가지치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열린데이터광장’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가로수는 2017년 30만6972그루에서 지난해 29만5852그루로 감소했다. 서울환경연합 측은 서대문구 아현동이나 강남구 신사동, 마포구 서교동 등 서울 곳곳에서 과도한 가지치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도심 열을 내리는 데 인공 그늘막보다 가로수가 효과적이란 연구 결과는 나와 있다. 서울기술연구원이 지난해 7월부터 4주간 서울 마포구‧중구 일대를 현장 조사한 결과 가로수 그늘은 주변보다 약 15.4도 낮았다. 인공 그늘막은 주변보다 8.4도 낮았다.

지난 3월 25일(왼쪽)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거리에 있는 가로수와 3월 22일(오른쪽) 서울 연세대학교 앞에 있는 가로수가 각각 가지치기된 모습. [사진 서울환경연합 제공]

지난 3월 25일(왼쪽)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거리에 있는 가로수와 3월 22일(오른쪽) 서울 연세대학교 앞에 있는 가로수가 각각 가지치기된 모습. [사진 서울환경연합 제공]

지자체 “전선‧태풍 등 안전문제 고려해야”

반면 가로수를 관리하는 지자체는 안전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정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전신주 인근 고압 전선에 나뭇가지가 닿거나 태풍이 몰아칠 때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전기 합선 등으로 인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한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안전관리 차원에서 양버즘나무 등 일부 가로수는 가지를 많이 치는 경우가 있다”라고 했다.

지자체에는 나뭇가지가 자라 인근 상가 건물에 붙거나 은행나무 등 열매 냄새 등 여러 이유로 ‘가지치기해 달라’는 민원이 수시로 접수된다고 한다. 자치구 관계자는 “가능하면 수목을 제대로 키우고자 하지, (수목을) 제거하기 위해서 업무를 하지 않는다”라며 “적절한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남부순환로 일원에서 가지치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남부순환로 일원에서 가지치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촘촘한 가로수 관리 나선 정부·지자체

가로수 조성 및 관리는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시숲법)에 따라 해당 지자체가 맡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은 지난 3월 나뭇잎이 달린 가지가 25% 이상이 잘려나가지 않도록 권고했다. 산림청은 가지치기할 때 전문가 분석 등 절차를 거치며 신중하게 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시숲‧생활숲‧가로수 조성‧관리 기준을 지난 6월 고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 기준 등이 정해진 만큼 향후 자치구 등에선 가지치기 작업을 신중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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