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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오솔길, 한미일의 '어깨동무'…수행원들 꼽은 '최고의 장면' [view]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25, 3, 100.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간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함축한 세 숫자다. 현지시간 18일 열린 한ㆍ미ㆍ일 정상회의의 성격은 “역내 안보와 번영을 위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을 천명한 역사적 장소”(윤 대통령)에서 “3국 간 파트너십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바이든 대통령), “전략적 연계의 잠재력을 개화시키는 것은 필연이자 시대의 요청”(기시다 총리)이라는 세 정상 발언에 녹아있다. 한마디로 “3국이 하나 될 때 더 강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이 더 강하다”는, 3국 정상이 채택한 ‘원칙(principle)’에 담긴 문구를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

◇25

윤 대통령은 현지시간 17일 오후 7시 워싱턴 앤드류스 공항에 도착해 18일 오후 8시 출국하기까지 워싱턴과 그 인근 캠프 데이비드에서 25시간 남짓 머물렀다. 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단기간의 해외 순방이자, 워싱턴을 오가는 비행시간(27시간, 서울→워싱턴 13시간, 워싱턴→서울 14시간)보다 두 시간 짧았다. 이는 오롯이 이번 순방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ㆍ미ㆍ일 정상회의’ 만을 염두에 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옵션은 애초부터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25시간 중 윤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머문 건 8시간 정도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을 바꾼 8시간”이라며 “한ㆍ미ㆍ일 정상회의는 인ㆍ태 지역의 핵심적인 포괄적 협의체로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3

포괄적 협의체로서의 3국 관계는 세 정상이 채택한 캠프 데이비드 정신(spirit)ㆍ원칙(principle)ㆍ공약(Commitment) 세 문서에 담겼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기존에 사용해 온 성명이나 선언 대신 가치가 부여된 명칭을 사용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세 나라가 가치와 규범에 입각해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인ㆍ태 지역의 중심축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세 문서는 협력의 주체와 범위를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매년 최소 1회 이상의 3국 정상회의 정례화를 비롯해 외교장관ㆍ국방장관ㆍ국가안보보좌관(국가안보실장) 연례 회의와 재무장관 회의 출범 등을 명문화했다. 최고위급인 정상을 시작으로 차관보급이 주축인 혁신기술 기동타격대 관련 논의까지, 회의 준비를 위한 실무 논의를 포함할 경우 3국은 1년 내내 안보와 경제 분야 협의를 이어가는 셈이다.

분야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3국 연례 훈련 등 전통 안보 영역 외에 공급망 조기경보 가동 등 경제 이슈, AI·양자 등 미래 이슈까지 망라한다. 동맹은 아니지만, 기존 인·태 지역 다자 협의체인 오커스(AUKUS, 호주·영국·미국)나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보다 더 강력한 협의체가 탄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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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결속력을 명문화할 것인지를 놓고 3국 간 온도 차도 있었다고 한다. ‘공동 이익과 안보 관련 도전 등에 신속 협의와 정보공유, 공동대응 조율’을 명시한 ‘공약’ 문건이 대표적이다. 정상회의 직전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문서의 명칭을 '협의 의무(duty to consult)'라고 알렸는데, 최종 문서는 공약으로 정리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의무라 적시하길 원했지만, 한ㆍ일 모두 공약으로 완화하자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이는 이번 회의가 한ㆍ미ㆍ일 3국 동맹 구축의 전 단계 아니냐는 주변국과 일부 한ㆍ일 국내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고 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공약은 정치적 약속이라는 의미로, 국제법적 의무인 동맹과는 상당한 간격이 있다”며 “현재 3국 동맹이나 한ㆍ일 동맹을 염두에 둔 그 어떤 움직임도 없다”고 설명했다.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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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성명 격인 ‘정신’ 문건에도 그간 중국 관련 논의 때 관용구처럼 사용해온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 반대’라는 표현 앞에 ‘중국에 의한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이라는 표현을 적시했다. ▶매립지역의 군사화 ▶해안경비대 및 해상 민병대 선박의 위험한 활용 등의 표현도 담겼다. 애초 정부 당국자는 “중국이란 단어는 남중국해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한 번 정도 언급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결과물은 달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8월 초,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필리핀 민간선박에 물대포를 쏴 아세안에서 문제가 돼 이 부분은 중국을 명시하자고 판단한 것”이라며 “그 외엔 중국을 견제한다기보단 규범과 원칙에 입각한 협력 대상이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말했다.

◇100  

“기자회견장 포디엄(podiumㆍ연단)을 오가는 100m가량의 오솔길을 세 정상이 나란히 걷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캠프 데이비드에 윤 대통령을 수행했던 당국자들이 전한 말이다. 이 길을 오가며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정상들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여러 차례 웃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한ㆍ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정치적 용기에 감사드린다. 두 분의 용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강제징용 논란의 돌파구를 찾으려 한 윤 대통령의 결단이 한ㆍ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고,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까지 이어졌다는 찬사였다. 기시다 총리도 “윤 대통령과의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이 파트너로서 힘을 합쳐서 새 시대를 열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소 연 1회 정례화 약속에 따라 내년에도 세 정상이 따로 모일 것이 확실시된다. 기자회견 때 “다음에는 한국에서 우리 세 정상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한 윤 대통령은 트위터에도 “다음 3국 정상회의 주최를 희망한다”고 썼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제안을 3국이 협의하는 과정이 뒤따를 것”이라며 “5월 히로시마에서 3국 정상회의가 열렸던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열리는 게 자연스럽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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