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극심한 기후 재난을 겪고 있다.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에 이어 캘리포니아에 허리케인이 상륙하고, 캐나다 산불에 따른 미국 북동부 공기 오염, 섭씨 40도를 웃도는 중남부 폭염, 가뭄과 홍수 등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 재난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욱 빈번해지고 심각해지며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치 쟁점이 될 조짐을 보인다.
19일(현지시간) 마우이 경찰 당국은 하와이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전날 기준으로 최소 114명이 됐다고 밝혔다. 미 연방 재난관리청(FEMA)이 파악한 실종자 수는 1100~1300명이다. 자동차까지 녹여 버린 화마의 위력에 신원 확인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며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9명에 불과하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이날 연설을 통해 지난 8일 발생한 산불로 건물 2700여 채가 파괴됐고, 피해 규모는 약 60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서북부에서는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이 통제 불능 상태로 확산하면서 주요 고속도로에 대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BBC 등이 이날 보도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는 전날 주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이날 산불이 접근 중인 마을 주민 3만 명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캐나다 서북부 산불 통제불능 확산…주민 3만명 대피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에드먼턴으로 날아가 대피한 주민들을 만난 뒤 “우리는 끔찍한 손실이 있는 곳을 재건할 것”이라며 “소방 지원을 위해 군사 자원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캐나다 산불센터(CIFFC)는 “역사상 최악의 화재”라고 밝혔다. 올해 캐나다에선 지난 10년 평균보다 128% 많은 불이 일어났다. 크고 작은 산불이 5700건 이상 일어나 남한 면적(약 10만266㎢)보다 넓은 13만㎢ 이상이 불탄 것으로 집계됐다.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로 북미 전역 대기 질이 악화하고 있다. 인접한 미국 뉴욕까지 연기가 넘어와 한낮에도 도시 전체가 뿌옇고 붉게 보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산불 배경으로 이상 기후 영향을 꼽는다. 지난겨울 캐나다에 예상보다 눈이 적게 내렸고, 올 들어선 유난히 건조한 봄이 이어졌다. 여름에 이상 고온이 계속되면서, 땅속 수분을 더욱 증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 최고급 물 폭탄이 예상되는 허리케인 ‘힐러리’가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 20일 새벽 상륙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허리케인 세기는 1등급으로 크게 낮아졌지만, 강풍과 대규모 호우를 동반하기 때문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등 주민과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국립해양대기청 관계자는 “열대성 폭풍이 캘리포니아에 상륙하는 건 84년 만에 처음”이라고 전했다. NYT는 “기상학자들은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지역에 생명을 위협하는 ‘잠재적’ ‘재앙적인’ 홍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고 전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캘리포니아 남부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존 포데스타 백악관 국가기후보좌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후변화가 가속화시킨 극한 기후의 대가를 미국 전역이 치르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기후변화와 다양한 극한 기후 현상들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재난이 미국에서 지구온난화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몬태나주에서는 청소년 16명이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화석연료 개발을 승인해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침해했다”며 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 14일 승소했다. 지난 10년간 미 전역에서 비슷한 소송이 수십 건 제기됐지만 승소한 건 처음이다.
보수 싱크탱크 R스트리트 선임연구원인 필립 로세티는 FT에 “기후변화를 무시하기 더욱 어려워지는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며 “공화당원을 포함한 젊은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해법을 내놓기를 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