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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뒤 계기판엔 '시속 300㎞'…차세대 고속열차 직접 타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험운전 중인 EMU-320 시승기]

 지난 16일 오전 11시 충남 공주시의 KTX 공주역. 3층 높이의 고가에 설치된 플랫폼에 푸른 빛이 강렬하고 날렵한 고속열차가 들어왔다. 차세대 고속열차로 불리는 EMU-320으로 현대로템이 제작해 코레일에 인도하기 전 시험운전을 하는 중이다.

 EMU-320은 8량이 한 편성이다. 현재 강릉선과 중부내륙선 등에서 운행하고 있는 준고속열차이자 외형이 똑 닮은 KTX-이음(EMU-260)은 한 편성이 6량이다. 기존 KTX는 20량, KTX-산천은 10량으로 구성된다.

EMU-320 두대가 이어진 중련편성. 강갑생 기자

EMU-320 두대가 이어진 중련편성. 강갑생 기자

 그런데 8량짜리 치고는 꽤 길어서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열차 2대를 이어붙인 '중련' 편성이었다. 8량이 아닌 16량짜리 기차인 셈이다. 한 대는 지난해 9월 27일 출고된 601호였고, 다른 한 대는 지난해 말에 나온 602호였다. 중련 편성을 하면 하나의 열차 편으로 승객을 2배 실어나를 수 있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종종 사용한다.

지난해 9월에 출고된 EMU-320 1호차. 강갑생 기자

지난해 9월에 출고된 EMU-320 1호차. 강갑생 기자

 열차 출입문에는 발판 2개가 나와 있었다. EMU-320은 고상 홈과 저상 홈 모두에서 승하차가 가능하다. 플랫폼이 열차 문보다 아래에 있는 저상 홈일 때는 발판 2개가 계단처럼 나오고, 지하철처럼 평면 승하차를 하는 고상 홈에서는 약간의 단차를 메워주는 맨 위 발판만 사용한다.

EMU-320 출입문 발판. 모두 3단으로 이뤄져 있다. 강갑생 기자

EMU-320 출입문 발판. 모두 3단으로 이뤄져 있다. 강갑생 기자

 객차 안에 장착된 2인용 좌석들에는 비닐이 덮여 있었다. 좌석들 앞엔 옅은 붉은 색을 띠는 낯선 쇳덩이가 눈에 띄었다. 모두 7개의 네모난 쇳덩이가 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 그중 하나를 들어보니 꽤 묵직했다.

 현대로템의 민평오 책임연구원은 “쇳덩이는 개당 20㎏으로 한 상자에 모두 140㎏이 실려 있다”며 “승객이 모든 좌석에 탄 상황을 가정해서 실제와 유사한 무게를 구현하기 위해 쇳덩이를 놓아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자 하나당 체중이 70㎏씩인 승객 2명의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좌석 앞마다 놓여져 있는 쇳덩이 상자. 모두 140㎏에 달한다. 강갑생 기자

좌석 앞마다 놓여져 있는 쇳덩이 상자. 모두 140㎏에 달한다. 강갑생 기자

 열차 맨 앞에 위치한 조종실 부근엔 열차 속도와 각종 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기계가 놓여 있었고, 현대로템 관계자들이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중이었다. 열차 운행 상황을 한눈에 보고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평소에는 출입금지 구역인 조종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종석엔 다양한 계기판과 조작 버튼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EMU-320의 시험운전은 코레일 소속 기관사가 맡는다. 납품을 받으면 실제 운행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EMU-320 조종실. 강갑생 기자

EMU-320 조종실. 강갑생 기자

 공주역을 출발한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10분쯤 뒤 계기판에 시속 300㎞가 표시됐다. 거침없이 힘차게 달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조종을 맡은 이완기 기관사는 “KTX보다 가속과 감속 능력이 뛰어나고, 운전하기도 더 편하다”고 말했다.

조종실의 속도계가 시속 300㎞를 나타내고 있다. 강갑생 기자

조종실의 속도계가 시속 300㎞를 나타내고 있다. 강갑생 기자

 다만 속도가 올라가면서 좌우로 흔들림이 느껴져 다리에 조금 힘을 주고 서 있어야 했다. 객차 통로를 걸어갈 때도 흔들림이 제법 있었다. 용산역에서 공주역까지 타고 왔던 KTX보다 그 정도가 조금 더한 느낌이었다. 다만 좌석에 앉아있으면 흔들림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EMU-320은 맨 앞의 동력차가 뒤에 연결된 객차를 끌고 달리는(동력집중식) KTX·KTX-산천과 달리 별도의 동력차 없이 객차 밑에 모터를 분산 배치해서 달리는 ‘동력분산식’이다. 도심에서 흔히 이용하는 지하철 차량도 동력분산식이다.

EMU-320 객차 내부 모습. 강갑생 기자

EMU-320 객차 내부 모습. 강갑생 기자

 EMU-320은 8량 가운데 조종실이 있는 맨 앞과 맨 뒤 차량을 제외한 가운데 6량에 각각 4개씩 모두 24개의 모터가 달려있다. 동생 격인 KTX-이음은 가운데 4량에 모두 16개의 모터를 달았다.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의 고속열차는 대부분 동력분산식이며 힘이 좋고 가·감속 능력이 뛰어난 게 장점이다. 국토교통부는 앞으로 도입하는 고속열차는 모두 동력분산식으로 하도록 방침을 정한 바 있다.

동력분산식과 동력집중식의 차이. 자료 현대로템

동력분산식과 동력집중식의 차이. 자료 현대로템

 하지만 객차 바로 아래에서 모터가 돌아가기 때문에 동력집중식에 비해 다소 흔들림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앞서 2021년 초 운행을 시작한 KTX-이음도 초기에 휴대전화 화면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는 데다 소음이 크다는 민원이 쏟아져 전면적인 개선책을 추진한 바 있다. 민 책임연구원은 “KTX-이음 개선작업에 적용했던 방식을 EMU-320에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조종실이 있는 맨 앞칸에는 우등실이 배치됐다. 그런데 좌석이 2인용과 1인용으로 구분된 다른 고속열차의 특실과 달리 2인용으로만 2열이 놓여 있었다. 좌석 사이 팔걸이도 일반실보다 약간 넓을 뿐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2016년 발주 당시 기준으로 만들다 보니 기존 특실보다 편의성이 다소 부족하다”며 “이 때문에 실제 운영 때는 특실이 아닌 우등실로 부르고 요금도 낮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송정역. 강갑생 기자

광주송정역. 강갑생 기자

 공주역을 출발해 138㎞ 구간을 달리며 각종 시험을 한 열차는 50여분 뒤 광주송정역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오후 1시 50분쯤 다시 공주역을 향해 떠났다. 이번에는 속도를 다양하게 낮추고 올리며 집전장치의 성능을 시험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열차가 속도를 올렸다 낮추기를 반복하며 주행했다. 하지만 좌석에 앉아서는 별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열차는 역시 50분가량 지난 뒤 공주역에 안착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EMU-320의 시험운전은 올해 말까지 1년여간 이어질 예정이다. 코레일의 관련 규정상 처음 출고된 열차는 총 18만㎞의 주행거리를 달성해야만 인도할 수 있다. 현재는 12만㎞가량 채웠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출고된 EMU-320 1호차.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출고된 EMU-320 1호차. 연합뉴스

 이 사이 제동, 최고속도, 접전, 보호 장치 동작 확인, 소음, 진동, 주행저항, 냉난방 환기, 주행 안전성, 중련 시험 등 16가지 시험을 꼼꼼히 진행한다. 통상 공주역~광주송정역 구간을 달리지만, 간혹 선로 사정이 허락되면 강릉·광명·부산 등지도 다녀온다고 했다.

 차세대 고속열차가 시험운전을 무사히 마치고 코레일에 인도되면 내년 초에는 승객들이 실제로 경험해볼 수 있을 전망이다. 또 2027년이나 2028년쯤엔 더 많은 EMU-320을 볼 수 있게 된다. 지난 3월 코레일이 발주한 17편성(136량)과 4월 SR이 발주한 14편성(112량) 모두 현대로템이 수주해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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