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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 도전장 ‘월클’ 바리톤…1년 반 동안 ‘유령’에 시달렸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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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호 18면

[비욘드 스테이지] ‘오페라의 유령’ 주연 김주택

13년 만의 한국어 공연으로 화제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지난 4월 부산에서 개막해 지금은 서울 공연이 한창인데, 뮤지컬 팬들의 관심사는 최고 스타 조승우의 캐스팅 만큼이나 오페라 스타 김주택의 뮤지컬 데뷔에 쏠렸다.

2일 오후 뮤지컬 '오페라의유령' 팬텀역의 김주택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2일 오후 뮤지컬 '오페라의유령' 팬텀역의 김주택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김주택이 누군가. 2009년 스물셋 나이에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주역으로 데뷔한 이래 정명훈 같은 세계적 거장들과 ‘라보엠’ ‘사랑의 묘약’ 등 주요 오페라를 400여 차례 공연한 ‘월드클래스’ 바리톤이다. 2017년 JTBC ‘팬텀싱어’ 시즌2 준우승팀 ‘미라클라스’ 멤버로 크로스오버 시장까지 섭렵한 그가 이번에는 뮤지컬 판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23살때 이탈리아서 피가로로 데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시그니처인 유령 마스크를 든 김주택. 최영재 기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시그니처인 유령 마스크를 든 김주택. 최영재 기자

오페라와 뮤지컬은 같은 음악극이지만 ‘클래식 애호가’와 ‘뮤지컬 덕후’의 교집합은 크지 않다. 두 장르를 오가는 아티스트도 거의 없다. ‘월클’ 오페라 스타 김주택의 뮤지컬 도전기가 주목되는 이유다. “13년 만에 난 오디션 공고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했어요. 뮤지컬에 관심 갖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강력 추천한 작품이거든요. 인생은 타이밍이라는데, 이 작품이 저의 타이밍인 것 같았어요. 과거는 내려놓고 신인배우로서 접근했죠. 뮤지컬은 제 경력과 상관없는 분야니까요.”

운명처럼 유령 역에 캐스팅 됐지만, 막을 올리기까지 1년 반 동안 한순간도 유령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대 초반 3개월 준비해 겁 없이 데뷔한 오페라 무대와는 자신에게 쏠린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스트레스가 말도 못했어요. 첫 공연 때 그 속앓이가 현실로 실수 없이 해결됐을 때의 희열은 잊을 수 없죠. 전날 밤은 부담감에 잠도 못 잤고, 첫 솔로곡 ‘뮤직 오브 더 나잇’을 부를 땐 제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죠. 거울 속에서 나오는 장면인데, 망토로 가리고 얼마나 떨었는지.(웃음) 커튼콜 후에는 1년 반의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린 시원함에 대자로 뻗어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 모습 [사진 에스앤코]

'오페라의 유령' 공연 모습 [사진 에스앤코]

 오페라 가수에게 뮤지컬 곡이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발성과 창법 자체가 다르다. 자기 몸을 스피커 삼아 최대 성량을 폭발시키는 오페라와 달리, 뮤지컬은 마이크 속으로 섬세하게 전달하는 게 관건이다. “‘팬텀싱어’를 통해 핸드마이크 사용은 배웠지만 핀 마이크는 처음이니까요. 바리톤이 낼 수 있는 최고음인 ‘A플랫’을 내야 되는데, 성악처럼 크게 지르면 마이크에 안 담기거든요. 절반으로 조절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요.”

‘오페라의 유령’ 공연 모습. [사진 에스앤코]

‘오페라의 유령’ 공연 모습. [사진 에스앤코]

연기도 도전이었다. ‘유령’은 무대 위에서 서사가 빌드업 되지 않고 서브텍스트를 잔뜩 품은 까다로운 캐릭터다. “처음엔 분량이 별로 없네 싶었는데, 아니더군요. 갑자기 튀어나와 한두 마디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아요. 백스테이지에서도 극도로 집중하고 있어야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죠. 최고의 연기자인 조승우 형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성악가로서 노래 한땀한땀에 신경 써 왔다면, 지금은 연기라는 새로운 퀘스트를 완료하는 느낌이 재미있어요.”

변성기가 있는 남성은 통상 10대 후반에 성악에 입문하곤 한다. 하지만 김주택은 타고난 가창력의 ‘본투비 싱어’다. 어려서부터 도밍고 같은 테너를 꿈꾸다 변성기를 거치며 바리톤으로 전향했고, 고3 무렵 훌쩍 본고장으로 유학을 떠나 20대 초반에 이미 주연급으로 자리잡았다. 뭐든 남들보다 몇 발짝 빨랐던 셈이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사실 엄청난 미성에 보이 소프라노 음역대였어요. 노래방에서 ‘쉬즈곤’을 세 키 올려 불렀죠. 테너로 시작했는데, 그렇게 잘 나던 고음이 변성기 이후 안 나더군요. 엄청 우는 저에게 선생님이 바리톤 중에도 멋진 성악가가 많다며 피에로 카푸칠리를 들려줬어요. 그때부터 꿈이 ‘동양의 카푸칠리’로 바뀌었죠.(웃음)”

2일 오후 뮤지컬 '오페라의유령' 팬텀역의 김주택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2일 오후 뮤지컬 '오페라의유령' 팬텀역의 김주택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고2 여름 무심코 선생님을 따라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 마스터클래스에 갔다가 이탈리아에 매료되어 바로 유학을 갔다. 스물셋 나이에 본고장에서 피가로로 데뷔할 때는 그만의 ‘유령’이 있었다. 2009년 참가한 잔도나이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이었던 거물급 캐스팅 디렉터가 그를 발굴해 곧바로 주역으로 세운 것이다. “제게는 그분이 ‘음악의 천사’였네요. 그때 전국의 극장장들이 그가 찜한 신인 탄생을 보러 왔고, 유학 5년 만에 길이 활짝 열렸으니까요. 벌써 80쯤 되셨는데 건강하게 일하세요. 이탈리아에서는 성악가들도 80살에 주연을 맡곤 하죠.”

어린 시절엔 미성의 보이 소프라노

2일 오후 뮤지컬 '오페라의유령' 팬텀역의 김주택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2일 오후 뮤지컬 '오페라의유령' 팬텀역의 김주택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오페라의 유령’을 위해 그는 여러 오페라를 고사했다. 하지만 오페라를 떠난 건 아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저 하기 나름이죠. 십몇 년 동안 제 직업이었으니 돌아가는 건 문제 없다고 봐요. 하지만 당장은 뮤지컬을 더 하고 싶어요. 지금이 아니면 못하니까요. 이제 시작이니 좀 더 빌드업해야죠. 제 아이덴티티요? 노래하는 사람이요. 오페라 가수나 뮤지컬 배우라는 한 가지 타이틀로 사는 세상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정답이 없는 뮤지컬이 더 성향에 맞는다”고 했다. 틀에서 벗어나면 틀린 것이 되는 오페라에 비해 뮤지컬은 이리저리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세계를 다 경험해 보니 가장 다른 게 텐션이에요. 제 끼를 분출할 수 있는 건 뮤지컬 쪽이더라고요. 소리도 질러봤다가 울어도 봤다가, 제약이 없으니 텐션이 올라가요. 호기심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게 많은 제 성향에 잘 맞는 것 같아요.”

2일 오후 뮤지컬 '오페라의유령' 팬텀역의 김주택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2일 오후 뮤지컬 '오페라의유령' 팬텀역의 김주택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뮤지컬 관객의 텐션도 이제껏 다른 무대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짜릿한 것이었다. 첫 커튼콜 때는 “무서웠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개막 전 조승우 형님이 뮤지컬 관객은 호응이 다르다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함성 소리에 몸이 뒤로 밀리는 느낌은 경험해 봐야 알겠더군요. 압도되면서도 행복했죠. 그 벅찬 행복감을 공유하고 싶어서 커튼콜 때 날리는 손키스가 제 시그니처가 됐는데, 이탈리아 스타일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표현입니다. 그때 활짝 웃어주는 관객들 모습이 너무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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